["오늘도 참는다"…은행원 잔혹사] 시리즈

<1>"칼로 찌르겠다 협박" 눈물의 메모
<2> 좋은 지점장, 나쁜 지점장
<3> 괴롭힘 민원은 늘고 있다

[은행원 잔혹사③] "3년간 한명이 150건 신고"…감정적 민원에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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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송승섭 기자] 지방의 한 농협 지점에서 일하는 김현우(40·가명)씨는 은행밥 10년차에 거물급 블랙컨슈머를 만났다. 3년 동안 150번에 걸쳐 본사는 물론 금융감독원, 국민신문고에까지 갖은 방법을 동원해 민원을 접수한 사람이다. 처음에 지점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대출금 상환이 연체돼서 추가 대출을 거절당하자 그때부터 돌변했다.


김씨는 "똑같은 문제로 3번 이상 신고하면 더 이상 신고를 못하게 되니까 직원이 불친절하다고, 지점장을 안 만나게 해준다며, 사은품을 안 준다는 식으로 오만가지 이유를 대며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지점 직원들은 물론 신고를 접수받은 당국까지 혀를 내둘렀다. 나중에는 금감원에서 이 고객이 제기한 민원은 더 이상 은행측에 전달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중·반복 민원 제기 건수는 해마다 늘어

은행을 향한 중·반복 민원 제기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금융업계에선 이를 근거로 2020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통과된 이후 오히려 소비자 권리를 악용하는 진상고객 우려가 더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반복 민원의 경우 정상적으로 처리된 민원에 불만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감정적인 민원을 제기하거나, 금융거래 의도 없이 직원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민원을 유발하는 블랙컨슈머 행동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전체 분쟁조정 신청건수는 2018년 921건 → 2019년 1462건 → 2020년 1797건 → 2021년 1375건으로 지난해부터 내리막길에 돌아섰다. 그러나 분쟁조정 중·반복 신청건수를 보면 흐름이 다르다. 같은 기간 279건 → 402건 → 511건 → 655건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5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지난 4년간(2018년~2021년) 전체 분쟁조정 신청건수과 중·반복 신청건수를 살펴본 결과 하나은행(전체 1368건, 중·반복 716건)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우리은행(전체 1169건, 중·반복 384건)이었다. 신한은행(전체 821건, 중·반복 206건), KB국민(전체 502건, 중·반복 131건), NH농협(전체 432건, 중·반복 108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무조건 저자세' 방식으론 해결 못해

6년차 은행원 차정식(35·가명)씨는 “얼마전 나에 대한 민원이 접수된 날에 하루 종일 외부 출장 나갔던 지점장님한테까지 한밤중에 전화를 받아 혼이 났다"며 "민원 몇 번 받으면 지점에서 역적이 된다"고 토로했다. 은행원 개인이 민원을 받으면 KPI가 깎이고 지점 보너스가 줄어드는데다 상사들의 승진까지 악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은행원들의 성과지표에 소비자 응대 비중은 더 높아졌다. 2019년 사모펀드 사태 이후 KPI 구성에서 대면고객서비스 평가 비중이 대폭 상향됐다. 진상고객이 과장된 민원을 제기하고 부당한 요구를 해도 무조건 저자세로 받아줘야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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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은주 금융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블랙컨슈머에 대한 금융회사가 거래를 제한하거나 거절하는 경우 불공정 영업 행위로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뉴질랜드 은행 옴브즈만 제도에서는 2020년 소비자가 언어폭력을 은행 직원에게 했다는 이유로 그 고객의 계좌를 폐쇄한 사례에 대해 인정한 바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금융 당국을 중심으로 한 블랙컨슈머에 대한 대응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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