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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돈 훔치는 행원들…은행 횡령 40년사[송승섭의 금융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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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조명되던 은행권 횡령사고
사고 때마다 감독당국은 "내부통제 강화"
은행들도 '재발방지' 약속했지만 무용지물
강민국 의원 "금융위·금감원 기능 부재"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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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최근 금융권에서 횡령사고가 연이어 적발되고 있습니다. 고객의 돈을 관리하고 대가를 받는 금융업종에서 자금을 빼돌리고 알아채지 못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금융권 횡령사고는 사실 오늘 내일 일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반복됐고, 금융감독 당국의 감시·견제와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은행권 횡령사고가 주목받기 시작하던 때는 언제일까요? 언론이 은행의 횡령을 본격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던 건 1990년대입니다. 1993년 ‘안영모 은행장 횡령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동화은행의 안 행장이 회삿돈 25억원을 챙긴 사실이 들통이 났죠. 안 행장은 비자금을 임원 11명과 나눠 가졌고, 8억원은 생활비로 탕진했습니다.


불과 4년 뒤 이 은행에서는 다른 대리급 직원이 은행 돈을 챙긴 뒤 잠적하는 사고가 또 일어납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초림역지점에서 직원의 월급에서 원천징수한 돈 5억원을 훔친 것이었죠. 당좌수표였던 돈은 자신의 예금계좌에 입금했다가 수차례 현금으로 빼내 썼다고 합니다. 은행에 사표를 낸 뒤 외국으로 도주하려 했지만, 출국금지에 막히고 경찰에 수배까지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고객의 돈을 무단으로 찾는 질 나쁜 사고도 있었습니다. 1998년 전북은행 서울지점에서 과장급 직원 이모씨가 13억원을 횡령해 해외로 달아난 사건이었죠. 자금은 당시 전북은행의 거래처였던 한 법인의 당좌계좌에서 빼냈습니다. 불법적으로 돈을 인출한 뒤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달아나버린 겁니다.

대형은행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98년 신한은행서는 환율 급등락을 이용해 돈을 챙긴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지점장 4명을 포함해 총 12명이 환거래 명세표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횡령에 나섰죠.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까지 챙겼는데, 당시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회삿돈을 횡령하던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금감원은 은행들의 자체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금감원의 약속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고 고통받는 국민이 속출하는 와중에도, 고객 돈을 훔치는 행원과 이를 막지 못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횡령 수법이 갈수록 담대해지고 규모도 더욱 커졌습니다. 2000년 부천 중앙신협에서는 한 직원이 64억원을 빼돌리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중앙종금, 평화은행 등 비슷한 시기에 횡령사고가 있었음에도 다시 횡령이 벌어진 거죠. 은행들은 그때야 기업여신을 관리하라는 주문을 내렸습니다.


수십년째 반복되는 은행 횡령사고…대체 언제쯤 뿌리 뽑힐까?

2000년 11월에는 조흥은행 화정동에서 지점장이 70억원에 달하는 돈을 횡령했습니다. 지역의 한 상호신용금고가 은행에다 70억원을 맡겼는데, 계좌를 열어보니 실제로는 1200만원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이 지점장은 필리핀으로 도주해버렸고요. 조흥은행에서는 같은 해 다른 지점장이 은행의 담보물이었던 국공채 21억원어치를 빼돌려 주식투자를 하다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고요.


기업고객이 아닌 소비자를 기만해 돈을 횡령하는 범행도 있었습니다. 2007년 한 금융소비자 A씨가 30억원을 정기예금으로 맡겼는데, VIP실 팀장이었던 국민은행 직원이 가짜상품을 꾸며내 “연금이 더 많은 상품으로 바꿔주겠다”고 꼬드겼죠. 해당 직원은 이러한 수법으로 고객 돈 13억원을 주식투자에 쓰는 등 마음대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이후 유족들이 회사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는데 국민은행은 책임을 지기보단 법정에서 “국민은행의 사무집행과는 무관하다”고 맞섰던 사실이 알려졌죠.


횡령사고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5월까지 금융권 임직원이 횡령한 돈은 1091억8260만원에 달합니다. 2017년 89억8870만원이었던 횡령액은 올해 687억9760만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우리은행에서 벌어진 614억원 규모의 횡령사고에 대해 금감원이 일벌백계를, 우리은행이 철저한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30년 넘게 횡령이 터지고, 매번 은행과 금융 감독당국의 재발대책 및 내부통제 강화 조치를 내놨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다는 거죠.


강민국 의원도 이번 사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5년여간 확인된 금융권의 횡령액만 1000억원을 넘고 최근 횡령액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기능이 부재함을 보여준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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