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업계 '찬바람'…60주년 맞은 중기중앙회의 고민
원자재 가격 상승에 중소기업계 이중고
'납품단가 연동제'로 해묵은 논란 반복
대기업과의 자율조정 성사 건수 '0건'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중소기업중앙회가 설립 60주년을 맞았지만 중소기업계를 둘러싼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기업인의 경영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지 않는 문제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업계 숙원이었던 납품단가 연동제는 자꾸만 요원해지고, 새 정부가 선거 전에 약속했던 대통령 직속 대·중소기업 상생위원회 설치 이야기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환갑을 맞은 중기중앙회에 잔치집 분위기가 나기는커녕 시름과 고민만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답답한 건 2009년부터 도입된 납품단가 조정제도가 현장에선 실효성 없는 제도로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점이다. 상생협력법 개정을 통해 지난해 4월부터 중앙회가 중소기업을 대신해 대기업과 테이블에 마주앉을 수 있는 협상권을 갖게 됐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정신청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국회에서 법을 고쳤고, 인력과 예산을 재배치하는 등 자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과는 ‘제로’였다. 전형적인 졸속 입법, 졸속 행정이다. 중기중앙회 납품대금조정센터장은 9일 기자와 만나 "대기업과 거래 중인 기업이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있고, 협상 결과가 담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신청을 꺼린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서 전혀 작동않는 제도를 1년 동안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정부와 중앙회도 반성이 필요하다.
2008년에 열린 '원자재 가격과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 방안 토론회'. 왼쪽 세번째부터 인하대 최용록 교수, 사회자 연세대 경영학 양혁승 교수, 중소기업연구원 김승일 선임연구위원, 주물조합 허만형 전무, 고려대 유관희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납품단가 제값받기 방안에 대해 논의할 대통령 직속 대·중소기업 상생위원회 신설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중기부와의 업무보고에서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현실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름만 계속 바뀌면서 생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도 운영 실적이 저조한 각종 위원회를 대폭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중소기업계는 또 다시 법을 바꿔 원자재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자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시장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기회를 잡은 더불어민주당은 ‘공약 파기’라며 새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이처럼 이명박 정부 때부터 수년간 선거철마다 활용된 정치적 수단이자 공약(空約, 헛된 약속)이었다.
기업 간의 거래 대금 수준을 법으로 조정하는 게 맞는지, 어떤 기준으로 할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중기중앙회는 ‘기업이 자율조정 신청을 하지 않는다’며 손 놓고 있을게 아니라, 최대한 조정을 유도하되 중소기업이 대기업 종속 구조를 탈피할 수 있도록 수출 등 판로 개척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대기업의 좋은 사례를 홍보하며 동반성장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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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지금은 작고한 한 창업가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거래를 하면서 지나치게 이윤을 많이 남기려들면, 당장은 이익일지 모르지만 길게 보았을 때 그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다. (중략) 하청업자들과 거래할 때도 원가와 이익을 분석해서 최소한 그 거래에 따른 이익률의 반이 하청 업체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쓴 베스트셀러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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