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금리차 확대에 투자금 썰물…올여름 2002년 저점 붕괴 전망

[글로벌 포커스] 美빅스텝 밟자…끝없는 엔화의 추락 '1달러=150엔'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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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22년 만에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시작하면서 이미 20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진 엔화가 더 추락할 수 있다는 일본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책금리 차가 확대되면서 더 높은 금리 수익을 노릴 수 있는 미국으로 투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엔화 하락을 막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일본 재무성이 외환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모두 가능성이 낮아 엔화의 추세적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130엔까지 하락해 이미 2002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시장 관계자들은 2002년 당시 엔화 저점인 달러당 135엔 선 붕괴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올여름 달러당 135엔 선이 붕괴되고 이후 달러당 140엔, 150엔까지 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나쁜 엔저’지적에도…BOJ, 꿈쩍 않는 이유= BOJ는 지난달 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 금리를 -0.1%로 유지하고 장기금리인 10년물 국채금리를 0%로 유도하는 대규모 금융완화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엔저를 용인해서라도 금리 인상만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자 달러당 엔화 가치는 순식간에 130엔대까지 떨어졌다.


Fed의 빅스텝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BOJ가 노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미·일 간 금리 차가 더 확대돼 엔저는 더 가속될 수밖에 없다. Fed와 달리 BOJ가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는 이유는 장기간 디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물가가 여전히 매우 낮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981년 최고치인 이후 8.5%까지 오른 반면 일본의 3월 CPI 상승률은 1.2%에 그쳤다. BOJ가 통화정책의 기준으로 삼는 신선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0.8%에 불과했다. 4월 CPI가 2.1%를 기록해 BOJ의 통화정책 목표치(2%)에 도달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지만 일시적인 상승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게다가 근원 CPI 상승률은 4월에도 0.8%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근원 CPI 상승률은 2015년 이후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당시에도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한 데 따른 반짝 상승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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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J가 시중 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는 공개시장조작도 병행하고 있다. BOJ는 경기 부양 목적으로 가계와 기업이 돈을 쉽게 빌리게 하기 위해 2016년부터 국채 금리가 특정 수준에 도달하면 무제한 매입해 금리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현재 BOJ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0.25%에 도달하면 국채 매입에 나선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올해 두 배 넘게 올라 3.1%를 돌파한 상황에서 BOJ의 정책은 엔화 약세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투자금이 높은 금리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BOJ가 금리 수준을 낮게 유지하는 이유가 일본 정부의 부채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선진국 중 가장 높다. 아베노믹스가 본격화된 2013년 229.6%였던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1년 263.1%로 상승했다. 일본 국채 금리 상승은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中·대만 관계도 변수=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1%포인트 확대될 경우 엔화 가치는 달러당 약 8엔 하락한다. 현재 0.75~1%인 미국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3%로 오르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16엔 더 떨어질 수 있는 셈이다.


일본 파이브스타자산운용의 이와시게 타츠히로 애널리스트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는 계속해서 확대될 것이고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미·일 통화정책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며 "달러·엔 환율이 내년 3월에 달러당 150엔에 도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통화정책뿐 아니라 일본의 경상수지 적자, 중국과 대만의 긴장 관계 고조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니혼게이자이는 지난달 엔화 약세와 유가 상승 탓에 일본의 올해 재정적자가 2차 오일쇼크가 닥친 1980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우노 다이스케 투자전략가는 대외적으로 중국과 대만의 긴장 고조도 불안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가 불거지면서 엔화 매도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노 투자전략가는 "2024년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과 대만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0~150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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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역환율전쟁 가세하나= 통화 약세는 비단 일본만의 고민은 아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7일(현지시간) 달러 강세가 ‘역환율전쟁(reverse currency wars)’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통상 환율 전쟁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가 치솟는 것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최근의 움직임은 이와 반대라는 뜻에서 역환율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재 달러는 일본 엔화뿐 아니라 유로, 영국 파운드, 중국 위안을 비롯한 신흥국 통화 등 전 세계 통화에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 강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각국이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해 자국 통화 강세를 유도하는 정책 경쟁을 벌일 수 있다고 FT는 경고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섣불리 외환 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본 소니파이낸셜그룹의 카노 마사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외환 시장 개입이 되레 악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Fed가 올해 말까지 잇따른 빅스텝을 예고한 상황에서 재무성이 엔화를 매수해봤자 기대한 만큼 엔화 강세 효과가 나타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카노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에 개입했다가 실패하면 재무성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 된다"며 "외환 시장 개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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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BS 방송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 기간이던 지난달 22일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외환 시장에 공동 개입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슌이치 재무상은 IMF·WB 연차 총회 참석을 위한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통화 당국과 환율 움직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두고 긴밀히 소통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재무성 고위 관계자는 TBS 보도 다음 달 해당 보도는 오보라며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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