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딸깍발이] 오프라 윈프리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첫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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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어느 일요일 아침. 어린 여자아이가 집 뒤에 우물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리라는 할머니의 “명령”을 받는다. 어렵지 않은 일. 하지만 장난삼아 받은 물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호되게 매질을 당한다. “할머니는 저를 엎드려뻗치게 하고 살갗이 부풀 정도로 심하게 매질”을 했다. 피가 배어 나와 빳빳한 천에 핏빛 얼룩이 번질 정도로... 전 세계 140여 개국에서 수천만명이 시청한 역대 최고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의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의 어릴 적 이야기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윈프리는 생애 첫 6년을 할머니 손에서 “매 맞고도 미소 짓는 아이”로 자랐다. 늘 외로웠고 자신이 그저 부모의 짐일 뿐이라고 여겼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각’은 윈프리 인생을 관통하는 트라우마가 됐다.

트라우마 전문가 브루스 D. 페리 박사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부정적 경험과 스트레스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의 가치와 자격에 대한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억누르며, 남들에게 순응하게 만든다. 어려운 도전이나 불편한 상황에 직면하면 습관적으로 회피하며, 타인과 관계 맺거나 유지하는 걸 힘겨워하게도 한다. 윈프리는 자신의 이런 성향으로부터 벗어나는데 반평생이 걸렸는데, 책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는 그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다.


책은 두 사람이 트라우마와 뇌, 치유와 회복탄력성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한 내용을 열 개의 과정으로 압축해 제시한다. ▲트라우마가 우리 몸에서 작동하는 방식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개인의 다양한 경험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의 역사 ▲위협에 맞서는 뇌의 대처법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얼마나 더 취약해지는지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를 지혜로 바꾸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페리 박사는 사람들에게 진단명을 내리기 전에 먼저 그들이 자라온 삶이 뇌에 미칠 영향, 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포함한 삶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제목처럼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을 통해 누군가의 행동과 마음에 나타난 문제를 그 사람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서 문제의 원인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옥 같은 마음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이유 없이 혹은 별것도 아닌 일로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이유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듣는 순간 한국전 참전 당시의 참호로 돌아간 듯 비명을 지르는 로즈먼씨,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와 똑같은 화장품 냄새를 품기는 선생님에게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던 샘처럼 말이다.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았다면 다음 순서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인데, 그 해답은 사람 간의 ‘연결’에 있다. 사실 온전한 연결의 순간은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이다. 열한 살 소녀 케이트 역시 죽음을 앞둔 엄마와 보낸 몇 달의 시간 중 ‘새벽 2시에 엄마와 시리얼을 나눠 먹은 일’을 제일의 추억으로 꼽는다.


중요한 건 사랑받는 경험이다. 사랑받아 본 적이 없다면 사랑하기 위한 신경망은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사랑하는 능력은 연습하고 사용하면 생겨날 수 있고,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도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회복탄력성의 생성과도 연계된다.


도전은 회복탄력성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다. 흔히 자극에 과도하게 노출시켜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충격 요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큰 위험성을 내포한다. 두 저자는 ‘딱 적당한 크기’의 도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윈프리는 “스트레스는 딱 적당한 정도여야 하고 도전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아이를 보호해 줄 안전 지지대가 있어야 한다”며 “자기가 사랑받고 있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는 아이가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선택을 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만의 강정과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역경을 살아 낸 사람에게는 인생의 어느 시점엔가 그 경험을 되돌아보고, 거기서 배우고 성잘할 수 있는 때가 오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해준 윈프리지만 자신의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치유된 트라우마는 그의 발걸음을 되돌렸고 “나는 괜찮다. 그러니 이제 내가 괜찮다는 걸 알고 떠나셔도 된다”며 과거의 죄책감으로부터 어머니를 해방시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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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저자는 다정한 위로와 냉철한 과학적 조언을 내포한 이 책이 부서진 마음을 안고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괜찮다”는 위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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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브루스 D. 페리·오프라 윈프리 지음 | 정지인 옮김 | 부키 | 424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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