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드디어 나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말았다. ‘드디어’라는 부사를 굳이 써야 할 만한 일이다. 어떻게든 피해 다니고 있기는 했으나 조만간 반드시 걸리고야 말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아직’이었던 모두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간 어디에서든 마스크를 잘 벗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야 할 때면 조금은 더 조심했고, 그래서 한동안 감기 비슷한 것도 걸린 일이 없었다. 오미크론이 잦아들 때까지 올 봄은 어떻게든 잘 지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도 조금은 생기던 차였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녀온 두 아이에게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절반 정도는 확진되었고 특히 유치원에는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열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춥다는 말을 반복하는 두 아이를 보며 나는 알았다. ‘아, 두 사람 모두 코로나에 걸렸구나.’ 하고. 자가 키트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고 다음 날 병원의 신속항원검사에서도 양성이었다. 나와 아내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이틀 정도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고 하니 큰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도 아내도 그럭저럭 담담했다. 그러나 허탈한 것이었다. 2년 가까이 조심했던 그 한 시절은 다 무엇이었나. 아픈 아이들은 나에게 말했다. “아빠, 안아 줘.” 안아달라니,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저렇게 해맑게 안아달라고 하다니. 나는 그들에게 너희는 코로나에 걸렸으니 집에서도 격리를 해야 한다,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대신 그들을 안아주었다. 해열제를 먹고 열이 조금 떨어진 아이들은 이불에서 나와서 “아빠 거인을 공격해라.” 하고 나에게 매달렸다. 그들의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나는 그때부터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들과 놀았다. 그래, 너와 함께라면 코로나가 아니라 그 무엇이든 괜찮아.
아이들과 이틀의 시차를 두고 나도 아내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이들은 이틀만에 몸도 마음도 회복했으나 어른들은 꼬박 5일 가까이 아팠다. 춥고, 열이 나고, 근육통이 오고, 무기력했다. 어쩌면 아이들과 다르게 음성 판정을 받은 건 다행이 아니라 ‘불행’이었던 듯하다. 차라리 같이 아팠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결국 부모와 아이는 운명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떠한 몸과 마음이 되든 그를 끌어안게 된다. 그 안아달라는 한 마디에 오래 생각할 것이 없었다. 만약 내가 돌보아야 할 연결된 존재가 없는 삶이었다면 나는 코로나의 종식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는가, 왜 사람들은 이리 느슨한가, 하면서. 그러나 코로나가 아니라 그 어떤 위협에든 구조적으로 그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알면서도 묵묵히 일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를 껴안을 수밖에 없는, 그게 자신의 일이거나 삶인 사람들.
이제 코로나의 끝이 보이는 듯하다. 많은 상처를 남겼으나 모두가 저마다의 가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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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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