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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형 확정된 '간병살인' 20대…韓 사회 큰 숙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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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4년 확정된 '간병살인' 청년 피고인
신체 못 움직이는 父 영양식 끊어 숨지게 해
의료비·생활고 감당 못했던 이면
"가족 한 명 무너지면 가정 무너지는 구조" 지적도
정부, 지난달부터 지원대책 마련 추진
전문가 "돌봄은 가족 아닌 국가·사회의 문제"

어린 나이에 가족 구성원을 간병하게 된 가족 부양 청년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린 나이에 가족 구성원을 간병하게 된 가족 부양 청년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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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친부를 방치해 숨지게 한 이른바 '간병살인' 사건 피의자 A씨(23)에 대한 실형이 확정됐다. 앞서 이 사건은 무력한 아버지를 굶겨 살해한 패륜 사건으로 알려졌다가, 실은 A씨 또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사건의 이면이 드러난 뒤 A씨의 형량을 감경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대선 후보 시절 직접 A씨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정치권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청년이 아버지의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릴 때까지 '복지 사각지대'에 갇혀 있었던 간병살인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숙제를 안겨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심한 생활고에 父 방치해 숨지게 한 아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31일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0년 9월께부터 심부뇌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던 아버지 50대 B씨의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워 지난해 4월 B씨를 퇴원시킨 뒤, 혼자서 돌봤다.

A씨는 퇴원 후 이튿날부터 B씨에게 처방약을 주지 않고, 치료식도 정상적인 공급량보다 적게 주다 일주일 뒤부터는 홀로 방치해 같은 해 5월께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초 이 사건은 냉혹한 아들이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살인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탐사보도 전문매체 ' 셜록' 취재 결과 그 이면에는 지독한 생활고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장 노동자였던 B씨가 갑작스런 질환으로 쓰러지자, 당시 공익 근무를 앞둔 청년이었던 A씨는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다. 당장 가정의 수입이 끊긴 가운데 수술, 입원, 요양치료 비용만 약 2000만원 넘게 나왔고, 생활비·집세 등도 밀려 가스와 인터넷이 끊겼다. 결국 당장 먹을 쌀까지 바닥나자 A씨는 B씨를 퇴원시키고, 방치해 숨지게 만들었다.


지난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또한 "A씨는 아버지가 퇴원해 자신이 직접 간병할 상황에 놓이자 범행을 계획했다"며 똑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런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문제가 없다고 보고,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탄원 빗발친 '간병살인' 비극…"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


2심 판결이 나온 지난해 말, 일부 시민들은 A씨를 선처해 달라며 탄원서를 냈다. 비록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부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갓 성년이 된 A씨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A씨는 극심한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연합뉴스

A씨는 극심한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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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2심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사건 당시 피고가 느꼈을 심적 부담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어린 나이로 아무런 경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건강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아버지를 기약 없이 간병해야 하는 부담을 홀로 안게 되자, 미숙한 판단으로 범행을 결심한 점 등 유리한 정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이 상임고문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지난해 11월 직접 이메일로 A씨에게 위로 편지를 보냈다. 서신에서 그는 "(A씨 사연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가 오롯이 담겨있다"며 "가난의 대물림, 가족 한 명이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는 간병의 구조, 그로 인해 꿈과 미래를 포기하는 청년의 문제까지"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분들, 간병으로 고생하는 가족분들이 사각지대 없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英·日 등 이미 지원체계 잡혀…이제 첫발 뗀 한국 간병 청년 지원제도


간병살인 사건은 한국 청년 문제에 큰 숙제를 안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간병 부담을 떠맡게 된 청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조기현 작가의 저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보면, 20세 시절부터 약 9년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뒷바라지한 젊은 청년의 생활고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간병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사회의 고령화·저출산 기조와 맞물려 있다. 아이를 낳는 부모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다 보니 부양하는 자녀의 연령은 오히려 어려지고 있다. 장년층 나이에 접어든 부모가 갑작스러운 질환을 얻어 환자가 되면,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청년이 가장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경험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간병 청년에 대한 복지 체계가 구축돼 있다. 일례로 영국은 지난 2014년 '아동가족법'을 통해 어린 나이에 부양 의무를 진 청년을 뜻하는 단어 '영 케어러(young carer·어린 부양자)'의 법적 정의를 명시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국민보건서비스(NHS)와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이들 영 케어러를 직접 지원하고 있다.


일찍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들에게 가사지원, 간병, 온라인 상담 등 서비스를 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찍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들에게 가사지원, 간병, 온라인 상담 등 서비스를 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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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평균 연령이 48세를 초과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일본 또한 청년 부양자들에게 가사노동 지원, 간병, 온라인 상담 등 각종 서비스를 정부에서 제공한다.


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청년 부양인구에 대한 가계 실태조사가 이제 막 추진 중이다. 그동안은 A씨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갇힌 청년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전문가 "돌봄은 가족이 아닌 사회의 영역"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14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하고, 가족을 간병하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가족 돌봄 청년은 장애, 정신 및 신체 질병, 약물 등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년과 청소년을 지칭한다. 정부는 우선 중 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 대학생, 대학생이 아닌 34세 이하 청년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현황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며, 조사를 통해 파악된 돌봄 청년들을 즉각 지원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긴급돌봄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의료급여 ▲재난적 의료비 ▲교육급여 ▲대학생 튜터링 사업 ▲학교 밖 청소년 검정고시 지원·직업체험 프로그램 등 기존 복지 사업과 연계된 것들이다.


전문가는 '간병 부담'이 단순히 가족 구성원뿐만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무리 복지 체계를 마련해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관련 정보를 모르고 신청을 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힘들다"라며 "또 한국 사회의 경우, 간병을 가족 문제로 여기는 의식이 있어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을 거부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사회 구조가 급변한 것에 반해 개인의 인식이 아직 이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간병을 국가 시설이나 요양원 등에 맡기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라며 "그러나 이런 인식은 변해야 한다. 국가의 돌봄 지원을 장려하도록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고, 돌봄도 가족이 아닌 국가와 사회 전체 영역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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