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손녀 상속될 유산, 아들 의식 잃은 새 빼돌린 시댁 [서초동 법썰]
[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본인은 등기의무자와 동일인임을 확인합니다. 김○○'
2018년 7월16일. 사업가 김모씨 명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가 팔린 뒤 등기신청 과정에서 '확인서면 필적기재란'에 적힌 문구다.
하지만 당시 혼수상태였던 김씨는 이 문구를 적을 수 없었다. 그는 그 해 6월5일 심한 두통을 느껴 응급실을 찾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약 2개월 만인 8월8일 세상을 떠났다. 병원 관계자는 김씨가 이 기간 의식을 회복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배경엔 김씨의 모친인 A씨(85)가 있었다. 며느리 B씨와 이혼한 아들 명의로 매매계약서에 서명하고 도장까지 찍은 것. 아파트를 매매한 사람도 김씨의 이혼소송을 대리한 변호사 측이었다. 이 계약이 없었다면 아파트는 초등학생 외동딸인 김양(당시 9세)에게 상속될 수도 있었다.
김양과 친권자 B씨는 "아파트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계약을 진행한 A씨는 자신이 아들의 재산 처분권을 전체적으로 넘겨받은 상태에서 등기가 이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97단독 김재은 판사는 "이 사건 소유권이전등기는 제3자가 망인의 위임 없이 그 인장 등을 이용해 마친 원인무효의 등기로 봐야 한다"며 김양과 B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 판사는 A씨의 형사처벌 전력을 판결문에 함께 명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A씨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형사 재판에 넘겨져 2020년 수원고법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김씨가 사망한 당일, 그 누나와 공모해 아들의 예금거래 신청서 등을 위조하고 총 6회에 걸쳐 은행에서 5억4800여만원을 편취한 혐의였다.
당시 A씨 측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형사 재판 1심에서 "아들의 개인채무 변제, 장례비 및 병원비, 사업장 인건비·임대료, 공사대금 채무 변제 등으로 사용했다"고 항변했다. 아들이 부족한 경제 관념으로 사업에 실패했고, 사망 전 수억원의 채무 사실을 알게 돼 재산관리를 위임받아 대신 일 처리를 해줬다는 취지다. 시민 배심원 7명은 재판부 판결과 마찬가지로 전원 유죄 평결을 했다.
한편 김양과 B씨는 아파트 소유권 소송과 별개로 A씨와 고모 등을 상대로 3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김씨가 자매들과 공동투자한 사업에 대한 소송이다. B씨 측은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김씨와 자매가 공동투자한 잡화점, 편의점 등의 공사대금 및 사업비가 사망한 김씨 돈으로 지급됐다고 주장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지숙)가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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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 변론기일에선 공사대금 지급과정에서 B씨를 도운 세무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인테리어 업체에) 공사비를 깎아달라고 협상하면서 '어머니가 죽은 아들 대신 돈을 내는 것'이라고 사정했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김양 측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상대는 B씨가 아들 대신 생돈을 물어주는 줄 알고 속아서 깎아준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5월1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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