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배설물, 건물 외곽 부식시키고 시민 건강 위협
과거 정부 행사서 쓰이며 개체 수 크게 늘어
'가축화'로 번식력도 증대
서울 도심에만 50만 마리 추정
아픈 비둘기도 '눈치'보며 돌봐야…도시 '민폐'된 비둘기
전문가 "불임사료 공급해 인도주의적으로 비둘기와 공존해야"

서울 청계천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햇볕을 쬐는 모습./문호남 기자 munonam@

서울 청계천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햇볕을 쬐는 모습./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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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 서울 영등포구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회사 건물 측으로부터 '비둘기 밥을 주지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A씨는 최근 회사 옥상에서 아픈 비둘기를 발견한 후, 그 비둘기를 돌보기 위해 밥을 챙기던 차였다. 하지만 사료를 발견한 비둘기들이 다수 몰리며 옥상은 꽤나 번잡해졌다. 이에 불편을 느낀 회사 내 다른 직원들이 건물 관리소 측에 민원을 넣었고, 결국 A씨는 아픈 비둘기조차 돌보지 못하게 됐다.


도심에서 거주하는 비둘기는 '민폐'가 된 지 오래다. 강한 번식력으로 곳곳에서 집단 서식하면서 배설물로 건물 외곽을 더럽혀 악취를 유발하거나 부식시키고, 바람에 날린 분뇨는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지난달 서울시에 따르면 도시에 주로 서식하는 집비둘기 관련 민원은 2019년 682건에서 지난해 1177건으로 약 2배가량 증가했다. 시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비둘기로 인한 곤란을 호소하거나 퇴치하는 법을 공유한다. 환경부는 2009년 집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 있는 쓰레기통. 비둘기 배설물로 현장에는 악취가 날 정도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 있는 쓰레기통. 비둘기 배설물로 현장에는 악취가 날 정도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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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는 하늘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개체 수 파악도 어렵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서식하는 비둘기 개체 수는 2019년 7만9731마리지만, 대한조류협회에서는 100만마리 정도로 추산했다. 이 중 50만 마리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둘기가 증가하게 된 건 과거 정부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올림픽·대통령 취임식 등 행사에서 쓸 목적으로 비둘기를 대량 수입해 날리는 일을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9년 환경부가 발표한 '유해 집비둘기 관리방안'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집비둘기는 1960년~1970년대 각종 행사 시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날리기 위해 국내에 수입됐으며, 이어 1980년대 들어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국제행사에 대비해 농가에서 본격적으로 사육하면서 개체 수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각각 3000마리가 방사된 바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와 종로 일대에 비둘기들이 몰려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와 종로 일대에 비둘기들이 몰려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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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 수 증가엔 비둘기 가축화도 한몫했다. 인간이 사육한 집비둘기는 인공 선택 등 가축화를 통해 왕성한 번식력을 갖게 되면서 계절에 상관없이 번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집비둘기는 가축 비둘기의 후손으로, 오랜 시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야생에서도 서식할 수 있게 됐다. 가축 비둘기는 바위 절벽에서 서식하는 바위 비둘기를 원종으로 하며 5000년전~1만년 전에 지중해 동부 지역 농부들에게 최초 가축화됐다고 추측된다. 바위 비둘기는 본래 번식기가 매우 길었지만, 바위 비둘기의 번식력이 가축 비둘기를 거치면서 인공 선택을 통해 지금의 짧은 번식 주기를 갖게 됐다.


비둘기 개체 수 급증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 만큼, 생명을 지키고 있는 비둘기와는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A씨는 "사실 요즘도 몰래 몰래 비둘기 밥을 주고 있다. 불쌍해 보이는 비둘기들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며 "비둘기가 도시에서 배설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주변을 배회하는 탓인지 무작정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둘기 수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은데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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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불임용 사료 공급을 통한 비둘기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하다 제언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이미 동물단체에서는 10년 전부터 비둘기에게 불임용 사료를 공급해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환경부, 농림축산검역본부 등에 요구해오고 있다"며 "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임기응변식으로 비둘기 민원에 대응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는 "정부에서 포획이나 '먹이를 주지 마세요' 등 임시방편으로 넘길 게 아니라 유럽처럼 불임용 사료를 공급하는 방법을 채택해야한다"며 "생명을 중시하는 인도주의적인 방법이고, 공존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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