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회수부터 수출입까지…韓기업, 전방위 비상(종합)
對 러시아 제재 수위 높아지자
신용장 개설 거부·물류망 차질
현지 진출 기업들 직격탄 맞아
대금결제 문제 52.4%로 1위
스위프트 배제 땐 파장 더 커
업체마다 재고 확보 등 비상
지난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 바실키프에서 한 남성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는 모습. 러시아군은 키예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육해공군을 총동원해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이미지 출처=AF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문채석 기자] 러시아산 펄프를 국내에 수입해 파는 A 업체는 최근 국내은행 4곳으로부터 신용장 개설을 거절당했다. 은행이 지급보증을 하는 신용장을 만들지 못해 대금결제가 어려워지면서 거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트랙터를 해외에 수출하는 B사는 당장 다음 달 러시아에 보낼 물량을 생산해야 할지 고민이다. C사 역시 다음 달 러시아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에 반도체 장비를 보내기로 했는데 물류시스템이 정상작동할지 아직 명확히 들은 게 없다.
국제사회가 대(對) 러시아 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현지에 진출해 있거나 현지 기업과 거래하는 우리 기업이 신용장 개설 거부, 자금 미회수, 부품 공급 및 물류망 차질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28일 한국무역협회가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기업들의 주요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이날 오전 기준 대금결제 문제가 52.4%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고 물류(33.3%), 정보제공(14.3%) 순이었다.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차단된 영향을 반영하기 전이어서 스위프트 배제에 따른 우리기업의 거래대금 결제 차질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국내 대기업 한 관계자는 "당장 제재대상이 러시아 현지 로컬은행인 만큼, 외국계 은행과 거래하는 기업은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과거에도 유가 등 외부변수에 따라 현지 경기상황이 들쭉날쭉했던 터라 사태가 길어지면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에너지·부품업계는 원재료 재고를 확보하는 등 자체 대비에 들어간 상태다. 반도체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네온·크립톤 등 희귀가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의존도가 절반 이상으로 높은 편인데 현재 재고수준은 3개월가량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은 설비를 가동할 수는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길어진다면 원료수급차질로 공장 가동이 멈출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르노 등 일부 완성차업체는 부품수급 등의 이유로 러시아 내 완성차공장 가동을 당분간 멈추기로 했다.
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노광공정에 쓰는 네온가스의 공급차질은 반도체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다"면서 "메모리 반도체사는 현재 최대 8주 정도 재고를 보유해 정상 수준인 4주보다 높지만 군사행동으로 오랜 기간 유통이 중단되면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이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재고량·유동성은 어느 정도 확보해둔 상태라 당장 공장운영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사태가 길어지거나 추가 제재로 따라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의 러시아산 납사 단가 상승 가능성도 눈앞에 닥친 리스크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 수입 납사는 연 2900만~3000만t가량이고 러시아산 비중이 20~25%로 가장 많다. 업계는 향후 2개월 도입분을 확보하고 있지만 전쟁이 그 이상 길어지면 중동·인도 등에서 납사를 사오거나 자체 가동률을 높여 해결할 방침이다. 정유·석화기업은 미국의 대 이란 제재 완화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는 중이므로 (이란산 원유) 도입 관련 논의 사항은 없지만, 전쟁 장기화로 이란 해제 속도가 붙으면 원유 수급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책연구기관도 국제 사회의 대러시아 제재가 장기화되면 한국 기업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28일 '우크라이나 위기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자료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러시아 현지 내수 위축으로 우리 기업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광범위한 금융제재에 따른 거래비용 증가도 리스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러시아가 스위프트 명단에서 빠져도 교역이 전면 중지되진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밖에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 제한으로 공급 감소가 이어질 경우에도 기업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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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연구위원은 "수출통제리스트(CCL) 카테고리 3~8에 등재된 상품만이 아니라 대러 주력 상품인 자동차, 기계, 플라스틱, 전기제품 등 수출행정규제(EAR99) 상의 최종 소비재에도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이 적용될 경우 대러 수출이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FDPR는 미국 밖의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제조 과정에서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장비나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제재 조항이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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