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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이란 불린 이어령 선생이지만 그도 병마를 피해갈 순 없었다. 암 투병을 하던 어느 날 기자 한명이 찾아와 묻는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신부님들에게 종교와 신과 죽음에 대해 스물네 가지 질문을 했다는데, 죽음에 당면해 병마와 싸우는 입장에서 답변을 해주실 수 있느냐고. 그 순간 이어령 선생의 입술에는 옅은 미소가 스쳤다. 이병철 회장은 세계적인 유명인사고, 세상사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 지혜 등 많은 경륜을 쌓았지만, 메멘토 모리에 있어서만은 자신이 “대선배라는 엉뚱한 자부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증명에 관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 신의 존재를 어찌 증명할 수 있는가. 신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등등. 이에 이어령 선생은 이병철 회장이 거둬들인 어마어마한 재산을 거론하며 돈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사람들은 은행의 잔고로 증명이 가능하다고 할테지만, 이어령 선생은 그건 금태환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5만원과 5000원의 가치를 설명하려면 물질적으로 이 둘을 증명해야하는데, 화폐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태환이 폐지되면서 불가능해졌다는 주장이다. 이제는 물질을 믿는다기보다는 금융 시스템을 믿는다는 것. 미국 달러를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달러는 종이 쪼까리에 불과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에서 일정 가치로 환치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원래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지 물질로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2부가 2019년7월~10월에 이뤄진 대담이라면 3부는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1년5월에 이뤄진 대담을 소개한다. 여기서 이어령 선생은 방역 독재란 말을 언급한다. 과거 페스트를 겪었던 유럽의 사례를 들면서 “코로나19가 창궐하니까 ‘방역 독재’가 다시 등장”했다며 “전에는 ‘죽일게!’하니까 저항하거나 망명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내 말 들어. 백신으로 살려줄게’하니 순종하며 돌아와 스스로 노예가 되는 식”이라고 말한다.

1부는 가장 최신 이뤄진 대담으로 지난해 12월 이뤄졌다. 코로나 이후 세계를 25가지 질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그중에는 신의 존재 증명에 관한 근원적 질문도 다수 포함됐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같은. 이에 관해 이어령 선생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부모님으로 바꿔보자. 우리가 부모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 부자지간이나 연인 사이에 증명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미 그건 끝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증명하는 관계가 아니라 믿음의 관계고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라며 “그것이 바로 가족의 사랑이고 남녀의 사랑이고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뤄진 신앙의 세계”라고 덧붙인다.


[빵 굽는 타자기] 신의 존재를 어찌 증명할 수 있는가 원본보기 아이콘

“지구에 종말이 닥쳐도 최후의 증인이 되어 ‘지구는 이렇게 끝났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 종말에 대해 쓰면 그 기록은 종말 뒤에 오는 것이니까 종말보다 0.1초 더 사는 거지.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한마디 말로 남길 겁니다. 사과나무가 아니라 언어의 씨앗을 우주에 뿌리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어령 선생과 관련한 시리즈 도서 1권으로 앞으로 19권이 더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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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44쪽 | 1만5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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