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D-31]"산재 못 잡고 CEO 잡을라…현장에서 시정지시 어기면 도루묵"
르포/성남시 오피스텔 신축공사 현장
법 시행 전 마지막 현장 점검의 날
안경덕 고용부 장관 직접 챙겨
"안전 발판·적재물 조치" 강조
철저한 점검에도 산재사망 줄지 않아
하청 현장 위험 요인 제거 어려운
근본적 문제 여전히 남아
현장 "바지사장 꼼수 우려"
지난 22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장에서 진행된 12차 현장 점검의 날 일제 점검 현장에서 근로감독관 등 관계자들이 시설을 점검하는 모습.(사진=문채석 기자)
[성남=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현재 전체 건물 공정률이 65%고 아주 위험한 공사는 끝난 것 같지만, 근로자들이 벽돌을 쌓고 있는 건물 외부 발판(비계·높은 곳 작업용 임시 가설물)에 안전 난간 설치가 안 돼 있는 부분은 철저히 조치하셔야 됩니다."
지난 22일 오후 3시30분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기도 성남시의 한 신축 오피스텔 공사 현장을 찾아 일제 점검한 뒤 현장 관계자들에게 미비점을 보완하라고 주문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진행된 마지막 현장 점검의 날 일제 점검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총 공사 금액이 50억원 이상이라 내년 1월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이었다. 안 장관과 동행한 이정열 고용부 성남지청 건설산재지도과장, 박미사 고용부 성남지청 건설산재지도과 팀장(근로감독관·특별사법경찰관) 등은 지하 4층·지상 6층 규모의 감독 현장 곳곳을 꼼꼼히 살폈다.
이 과장과 박 팀장은 이 사업장에 대해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외부 발판(비계) 안전 난간 설치 ▲높은 곳에 쌓아둔 중(重) 자재 정리 등 시정 요구 사항 두 건을 현장소장에게 통보했다. 이 과장은 현장소장에게 "(오늘 이후) 2주 안에 시정조치한 뒤 증명 자료를 보내라"며 "(만약 내년) 1월27일 이후에 적발됐다면 중대재해법상 (원청 최고경영자 등을 포함한) 처벌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장은 근로감독관이 시정을 요구한 뒤로부터 2주 안에 시정 조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안 장관은 콘크리트 양생 작업(굳을 때까지 난로 등으로 보호·관리) 작업을 천천히 하라고 당부했다. 작업 중 갈탄, 목탄 등을 쓰다가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사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것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최근 10년(2011~2020년)간 겨울철에 일어난 건설업 질식 재해 25건 중 17건(68%)이 콘크리트 보온 양생 작업 과정에서 발생했다.
근로감독관이 "준비가 잘 됐다"고 평가한 사업장에서조차 시정 요구 위험 요인을 잡아낼 정도로 근로 감독이 잘 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중대재해법의 실효성 논란으로 이어진다. 중대재해법을 시행하는 목적은 현장의 위법 사항이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미비해서 발생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법에 따르면 재해예방 인력·예산 등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사업장의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받는다. 정부는 이렇게 최고경영자(CEO) 처벌 장치를 둬야 사실상 근로감독으로는 개선하기 어려운 위험요인과 산재 사고사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산업계는 개정 산안법 시행 후 중대재해법까지 강행해 CEO 처벌 규정을 추가한다고 전국 하청 현장의 위험 요인과 산재 사고사망자 감축을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미 지난해 1월16일 시행된 산안법 전부개정안에 이미 대표이사의 안전보건계획 수립, 건설공사 발주자 의무 이행, 도급사업 시 사전승인 및 적격 수급업체 선정 등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의무가 반영됐고, 이 때문에 근로 감독이 강화됐는데도 산재 사고사망자는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재해법이 시행돼도 현 산안법 체제에서의 '근로감독→위험요인 발견→시정요구→2주 안에 시정 보고서 제출' 시스템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근로 감독 이후 시정 조치 보고서를 제출한 뒤 똑같은 위험 요인이 반복돼도 근로감독관이 인지하지 못하면 산재 사고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는 내년 산재 사고사망자 목표치로 연 100명 감축(700명대 초반 달성)을 제시했는데, 이는 올해 목표치인 전년 882명 대비 20% 감축(705명 미만 달성)보다 축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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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현행 산안법 체계에서 진행되는 고강도 근로감독으로도 풀지 못한 숙제를 중대재해법으로 해결하려 하다가 안전관리 책임자 인력 수급 문제, 시행령상 24개 직업성 질병을 앓는 근로자 채용 제한, CEO 법적 리스크 대비 및 비용 낭비 같은 역기능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점검 현장에서 만난 근로자는 "주 52시간제도 도입 등으로 법정근로시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안전 관리 비용은 늘고, 발주자의 요구대로 공사 기한은 맞춰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건설 업체들이 각자 대표 체제로 지배구조를 전환해 '월급쟁이 바지사장'을 세우는 등 '꼼수'를 쓸 가능성이 있고, 안전책임 관리자 구인난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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