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 자유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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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느끼지 못 한다." 최근 여론의 몰매를 맞은 대선주자의 말이다. 그 보도를 읽으며 ‘극빈’과 ‘자유’ 두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뜻을 몰라서가 아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한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단어의 뜻과 말의 뿌리를 생각하는 것은 직업병에 가까운 습관이다.


사전에 따르면 ‘극빈’은 ‘몹시 가난’한 것을, ‘자유’는 ‘외부적인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행위도 자유에 해당된다. 자유는 상태이자 조건이다. 그래서 자신이 자유롭다고 해도 실상은 자유롭지 못한 이들도 많다. 베풀지 못하는 부자는 집에 돈을 쌓아놓고 있어도 자유롭지 못하고, 손과 발처럼 부리는 아랫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하는 이도 자유인이 아니다. 다만 자유롭다는 착각을 하고 살 뿐.

앞의 대선주자의 말은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빈곤이 자유의 가장 큰 적인 것은 맞다. 당사자는 자기 발언이 문제가 되자, 극빈층에게 ‘더 나은 경제 여건이 보장되고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해서 자유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해명을 읽고 더 꺼림칙했다. 말은 사람의 잠재의식을 무심결에 드러낸다. ‘느끼게 해줘야’ 한다니, 우리 사회의 극빈층은 자유에 대한 느낌조차 가르쳐야 하는 이들인가. 그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개념들은 ‘부재’를 통해서 진정한 의미가 확인된다. 사랑을 잃어봐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굶주려 본 사람만이 한 끼 밥의 소중함을 안다. 손발 닳도록 일해도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마련 못하는 부모는 자유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다들 당연히 누리는 것들을 박탈당할 때 누구나 자유를 생각한다. 자유는 시혜를 베풀 듯 도와주고 가르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삶의 기본 조건이다.

부정식품, 최저임금, 일자리앱 등, 매일 말로 사건을 만드는 이 분은 언젠가 "집이 없어 청약통장을 못 만들어봤다"고 했다. 아마 집이 없었던 적이 없을 것이고, 그래서 집의 필요성도 절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류층 부모를 만나 사법고시 9수를 할 때까지 넉넉한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 집은 관심 밖의 문제였을 것이니 먹을 것 입을 것 아껴서 청약통장에 적금 붓는 서민들의 시시한 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툭 내뱉은 말이 사건이 되어 지지층에서조차 우려가 깊어지는 상황을 단순한 실수로 치부할 수는 없다. 말은 그의 세계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된 말은 정의, 평등, 공정이었다. 최근 자유라는 단어를 전 국민의 의식의 수면 위에 띄워 올려주어 고맙다. 한 사회학자는 현대 사회에서 자유의 주된 적은 국가권력자들, 재벌 및 빈곤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부의 합리적인 재분배, 공공복지제도의 확충이 시급하다.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과 사법부의 독립 또한 요원한 과제다. 자유는 배운 게 없고 가난한 이들이 모르는 개념이 아니다. 자유는 모든 개인이 응당 누려야 하는 존재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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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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