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의지 못 하겠다" 신변보호에도 되풀이되는 참극…불안한 시민들
신변보호 대상자에 잇따라 참극 벌어져
"경찰 믿을 수 있나" 시민들 불안감 토로
김창룡 경찰청장 "신변보호 관련 치안부담 폭증"
"현행 법제도로는 조치 수단 제한돼 있어"
전문가 "경찰 부담 있어…스마트워치 확보 등 쉽지 않은 편"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이모씨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나 가족이 살해되는 참극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느냐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는 최근 들어 범죄 피해자들의 신변보호 요청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경찰이 이에 대응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변보호 대상자 가족에 칼 휘두른 피의자
지난 12일,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자였던 20대 여성 A씨 모친과 남동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이석준(26)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씨는 11일 오후 A씨의 자택을 찾아, A씨 모친과 남동생의 가슴, 목 등 신체부위를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다.
당시 외출중이던 A씨의 부친은 오후 2시26분께 "아내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누군가 집에 들어온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5분 뒤인 2시31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A씨 모친과 남동생은 피를 흘린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A씨 모친은 끝내 숨졌다.
범행을 저지른 이씨는 사건 이전인 지난 6일부터 A씨를 감금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A씨는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자가 됐고 스마트워치도 지급 받은 상태였는데, 조사를 개시한 지 채 1주일이 되지 않아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신변보호 대상자였던 A씨와 달리,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A씨 모친과 남동생 등 가족에 대한 보호 조치는 따로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신변보호에도 참극 이어져…스토킹 피해자 살해당하기도
신변보호 대상자에게 참극이 벌어진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자신의 전 여자친구를 무참히 살해한 김병찬(35)은 피해자가 거주하는 서울 중구 오피스텔을 찾아가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김병찬은 약 11개월에 걸쳐 피해자를 괴롭혀왔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김병찬을 총 6차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귀갓길에 동행하거나, 긴급신고를 할 수 있도록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보호했다. 그러나 김병찬이 피해자를 살해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
약 한달 사이에 경찰의 보호 대상자였던 이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시민들은 불안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경찰이 피의자의 범죄 행위를 막지 못하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느냐는 하소연이 나온다.
20대 직장인 B씨는 "경찰의 신변보호 효과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라며 "집 가는 길에 잠깐 동행해 주는 게 끝인데 어떻게 믿겠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회사원 C씨(31)는 "여성을 스토킹하고 괴롭히거나 살해하는 범죄는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는데 경찰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것 같다. 피해자 여성들은 그럼 누구를 믿어야 한다는 거냐"라고 토로했다.
◆"경찰 치안부담 기하급수적 증가" 경찰청장 고개 숙여
일각에서는 경찰의 신변보호제도가 피해자들을 보호하기에 미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경찰은 범죄피해자가 수사 또는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봤거나, 볼 우려가 있는 경우 신변보호를 한다. 피해자 외에도 배우자와 친족, 신고자나 목격자, 참고인 또한 요청이 있을 경우 신변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구체적인 조치 내용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경고 △스마트워치 대여 △주거지 등 맞춤형 순찰 △폐쇄회로(CC)TV 설치 △임시숙소 제공 등이다.
그러나 신변보호는 피해자를 24시간 밀착 보호하는 개인 경호와는 거리가 멀다. 또 최근 피해자 신변보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에 반해 이를 담당하는 경찰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피해자 신변보호 요청건수는 지난해 약 1만4700건에서 올해 현재까지 2만1700건으로 크게 늘었다.
일부 지역에선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 물량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18일 경기남부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까지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접수된 신변보호 요청건수는 2698건이었지만, 스마트워치 보급은 그 절반 이하인 1093건에 불과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현행 법제도로는 경찰이 가해자를 사건 발생 초기에 실효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다"며 한계를 시인했다. /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이와 관련, 김창룡 경찰청장은 13일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변보호와 관련된 경찰의 치안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며 "현행 법제도로는 경찰이 가해자를 실효적으로 사건 발생 초기에 조치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다"라고 인력 부족 문제를 시인했다.
또 "경찰이 제공할 수 있는 신변보호 조치의 수단과 일반 인식 수준과는 현실적으로 차이가 많이 난다"며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피해자와 피의자) 분리 제지를 위해 긴급응급조치를 하더라도, 노골적으로 불응하면 과태료 처분밖에 할 수 없다"고 제도적 한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다만 "현장 대응력 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에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어나가겠다"라며 "신변보호를 비롯한 피해자 보호방안, 제도 개선 부분, 인력·시스템·장비 부분 등 종합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또한 최근 피해자들의 신변보호 요구가 늘어나면서 경찰의 부담이 늘어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뒤부터 지금까지 신고된 (피해) 건수가 지난 1년 동안 신고된 것보다 더 많은 수준"라며 "경찰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검은 월요일에 줍줍 하세요"…59만전자·400만닉...
이어 "현재 경찰 입장에서는 추가 스마트워치 확보 등 업무적 측면에서 쉽지 않은 편이고, 또 가해자들이 피해자나 그 직계 가족에 대해 어떤 시점에서 공격을 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예측을 하기 힘든 면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