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본분 내팽개친 경찰…기댈 곳 없는 국민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생명이 위협받는 폭력 범죄에 경찰이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져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스토킹에 시달리던 3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이 신변보호 차원에서 지급 받은 스마트워치를 두 차례 작동했는데 정작 경찰은 엉뚱한 곳을 수색하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경찰은 "오차 범위가 큰 위치추적시스템의 한계"라 해명했다. 2017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당시 112상황실과 휴대전화 앱을 통해 스마트워치 착용자 위치를 실시간 확인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란 점에서 이번 해명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피해자 주거지인 오피스텔과 관할 경찰서인 서울 중부서와는 직선 거리로 200m가 채 되지 않는다. 서에서 출동했더라도 1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지난 15일엔 인천 논현경찰서 소속 남·여 경찰관 2명이 관할 지역의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인명피해를 야기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은 40대 한 남성이 이웃 가족들에 흉기를 휘둘렀다. 현장에 있던 여경은 이 모습을 보고 피의자 제압을 시도하기는 커녕 몸을 피해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구조와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고 해명했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19년차 남경도 피해자 구제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사이 피해자는 중상을 입었고 지금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이 경찰 대신 부상을 당하며 범인을 제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삼단봉과 테이저건, 권총은 장식용에 불과했다. 이들을 대기발령하고 논현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는 것으로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비판이 거세지자 13만 경찰조직의 수장은 고개를 숙였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소명인데도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2일엔 시도경찰청장과 경찰서장이 모두 참석하는 화상회의에서 문제점과 재발 방지대책을 논의했다. 그렇지만 이번 사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 파악과 함께 현장 대응력 강화를 위한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해결책을 모색할 방침이라는 하나마나한 얘기만 늘어놨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경찰의 최우선적인 의무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경찰을 질타했지만 국민적 공분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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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이고 법과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경찰법 제3조는 국가경찰의 임무를 7가지 열거하고 있는데, 그 첫째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의 보호, 둘째는 범죄의 예방·진압·수사다. 그러나 경찰은 본분을 저버렸고, 국민은 사회를 방어하는 보루가 무너졌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을 지켜줄 것이란 확신을 주지 못하는 공권력은 더 이상 공권력이 아니다. 국민의 안위가 내팽개쳐진 현실이 수사종결권을 거머쥐고 권력에 도취된 경찰의 모습과 겹쳐지며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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