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 향한 갈망이 낳은 금속기술…정교한 한국 고미술 꽃 피웠다
호암미술관 '야금전' 가보니
선사시대 청동거울부터 현대 조각까지
한국 금속미술의 발전상 한눈에
제사장의 의제도구 '다뉴세문경'
절대적 존재 위해 금속제 양식 고안
5~6세기 제작된 '가야 금관'
한국 고대 야금의 정수 보여줘
불교는 금속미술 발전에 큰 영향
당간의 미니어처 '용두보당'으로
당시 건축양상까지 파악할 수 있어
이우환의 '철, 돌'·서도호의 '우리나라'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도 볼 수 있어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후기. 이때부터 청동거울 ‘다뉴세문경’이 유행했다. 얼굴을 비추는 용도가 아닌 빛을 반사해 자연 신(神)과 인간을 잇는 제사장의 의제도구였다. 거울의 가치는 무언가를 비추는 앞면의 반사력에 있다. 하지만 ‘다뉴세문경’의 진가는 뒷면에 나타난다. 여기엔 마치 컴퓨터로 디자인한 듯 정교하게 새겨진 기하학적 선과 무늬들이 가득하다. 0.3㎜ 간격의 선이 1만개가 넘게 그려진 것도 있다. 문양들은 태양빛을 상징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이를 통해 갈고 닦은 초정밀 금속기술, 한국 고미술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지난달 재개관한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금속미술의 발전상을 한눈에 확인해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주제는 ‘야금(冶金): 위대한 지혜’로 국보 5점·보물 2점 등 45점을 소개한다. 선사시대 청동거울부터 현대작가들 조각까지 한국 금속미술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흐름으로 계승돼오고 있는지 알기 쉽도록 정수만 뽑았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시뻘건 용암에 잿빛 암석이 녹았다 다시 굳는 형태를 반복하는 영상이 상영된다. 이 작품은 과테말라 활화산에서 촬영한 현대미술가 김수자 작가의 ‘대지의 공기’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이치를 다뤘다.
금속은 흙·불·물 등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전시 제목이 ‘야금’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금’은 광석 채굴에서부터 금속을 추출, 정련해 사용 목적에 적합한 형상으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포괄한다. 인류는 자연을 통해 얻은 금속을 단순 실생활의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권위·종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 존재나 추상적 가치를 위해 다양한 금속제 양식을 고안해냈다.
‘다뉴세문경’이 자연 숭배 의미를 담고 있다면 전시장 초입에서 유독 화려하게 빛나는 ‘가야 금관’은 그 대상이 인간인 왕으로 옮겨졌음을 상징한다. 5~6세기 제작된 이 금관은 국내 현존하는 가야 금관 중 유일하게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당시 가장 귀한 재료였던 순금과 옥에 세밀한 야금술을 적용해 화려한 장식무늬가 달린 금관과 금구를 빚어냈다. 이광배 호암미술관 책임 큐레이터는 "한국 고대 야금의 정수를 간직한 작품"이라며 "외형은 스키타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북방의 화려함을 가야의 심플함으로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금속미술은 한반도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다. 한국 고미술의 80%는 불교미술일 정도로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전 시대를 거쳐 금속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번 전시의 불교 테마에서는 종교와 만난 야금술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느끼게 해준다.
10세기 고려시대 때 제작된 ‘철조여래좌상’은 철불 특유의 거친 표면과 어두운 색감이 자비로운 부처의 표정과 대비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비슷한 시기 제작된 ‘용두보당’은 고려시대 유일하게 전해지는 당간의 미니어처다. 국보 136호로 지정돼있다. 이 큐레이터는 "당시엔 신앙을 지키기 위한 조형물로 용이나 봉황을 주로 사용했다"면서 "당시 석조와 건축양상까지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금속미술은 청동·철·금 등을 주조하는 것에서부터 세밀한 장식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는 삼국시대 나전칠기와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다양한 미술품에도 영향을 줬다. 이러한 야금의 전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회화·조각·건축 등 미술의 거의 모든 영역에 골고루 퍼져 우리 고유의 기풍과 멋을 자아내고 있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서 볼 수 있는 원광식 국가무형문화재 주철장의 범종 ‘선림원종’은 전통과 현대의 금속미술이 융합해 다시 태어난 작품이다. 신라시대 대표 명종인 선림원종은 6·25 전쟁 때 불타면서 파손됐다. 이를 원광식 주철장이 2005년 복원했다. 범종 아래엔 외형 거푸집 제작에 쓰이는 주물사를 깔았다. 거친 자연의 흙에서 위대한 예술품이 탄생했다는 의미다. 범종소리도 고요히 전시장을 채운다.
이곳엔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도 펼쳐져 있다. 그동안 고미술 위주의 작품을 선보여 온 호암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기획이다. 이우환의 ‘관계항’, 존배의 ‘원자의 갈비뼈’, 양혜규의 ‘소리 나는 돌림도형H’, 서도호의 ‘우리나라’ 등이 대표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속으로 만든 2만3000여개의 인간형상이 지도로 표현돼 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멀리서 보면 성냥개비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들의 얼굴과 의복까지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한국적 야금 문화로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를 부흥한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포스코 제철소의 모습을 영상에 담은 박경근의 ‘철의 꿈’도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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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은 내년이면 개관 40주년을 맞는다. 현재 미술관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공사는 내년 봄 마무리된다.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주말에만 5000여명의 관객들이 찾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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