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루트] 한국적인 정취 보존‥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조선시대 유교문화 유적지 양반 마을 경북 안동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 있는 문화유산 등재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지난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빈 방한은 21세기 새로운 한·영 협력관계의 버팀목을 놓은 의미 있는 행사로 기록됐다.
특히 영국 여왕이 방문한 경상북도 안동은 많은 문화재와 전통가옥 등 한국적인 정취가 고스란히 보존된 조선시대 유교문화 유적지다.
한국의 멋과 정취, 전통이 숨 쉬는 하회마을과 도산·병산서원 등 경상북도 안동의 세계유산 현장에서 오는 26일까지 ‘2021 세계유산축전 안동’이 펼쳐진다.
하회마을 대표 전통 탈놀이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고,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선생의 도산 12곡 음악회가 열린다.
병산서원에서는 서애 선생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풍류 병산' 음악극이 병산서원의 멋진 절경과 만대루를 배경으로 진행한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세계유산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누리는 '세계유산축전 안동'을 통해 자연과 어우러진 안동 문화의 우수함을 만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한국적인 정취 보존‥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② 한국의 서원 '병산서원'과 '도산서원'
■ 전통 문화의 자긍심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마을이다. 물돌이동이라는 별칭답게 낙동강 물줄기가 태극 모양으로 돌아나가는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 양진당, 충효당 등 유서 깊은 고택뿐 아니라 골목으로 이어지는 마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풍산 류 씨의 동성촌인 이곳은 옛 가옥과 함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안동의 대표적 민속 마을이다. 낙동강 물줄기와 함께 마을의 풍경이 펼쳐지는 부용대와 숲이 아름다운 만송정 송림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에서는 유교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중심에 안동지방 양반이 있었다. 벼슬길을 탐하지 않고 학문을 숭상했던 안동 양반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양반마을과 그들의 전통문화에서 느낄 수 있다.
굽이쳐 돌아가는 아름다운 하천과 수려하고 기품 있는 절벽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풍경을 접하는 순간, 이미 널리 알려진바, 안동을 편안한 동녘마을로 일컫는 이유를 알 수 있다.
1999년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안동을 두고 '가장 한국적이고 아름다움을 지닌 마을'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많은 고택 중에서도 입암 류중영과 류운용이 머물던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류성룡 종택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하회마을이 품은 보물이다.
뿌리 깊은 양반 문화가 깃든 만큼 다른 지역과 달리 음식문화 역시 전통적이면서도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헛제삿밥'은 양반들의 제사 문화를 담은 대표적인 음식이다. 유교문화가 뿌리내린 안동은 집마다 제사를 많이 지냈다. 제사음식이 남으면 각종 나물 반찬에 양념을 하지 않은 고추장을 쓱쓱 비벼 다른 제사음식들을 곁들여 반찬으로 즐겨 먹던 것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날에도 제례음식을 만들어 먹게 된 게 '헛제삿밥'의 유례다.
이밖에 '안동 간고등어'와 콩가루를 섞어 반죽해 만든 '건진 국시', 달콤하면서도 매운맛을 지닌 '안동찜닭'도 안동을 대신하는 표현이다.
■ 국보 안동 '하회탈' 전설
안동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는 국보 121호 안동 '하회탈'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69호로도 지정돼 있다.
원래는 12개의 탈이었지만 현재 전해 내려오는 하회탈은 모두 9개다. 하회탈의 표정도 다양하다. 표정이 풍부하고 생동감이 느껴지며 턱이 분리돼 탈 쓴 이가 말할 때마다 움직여 여느 탈과 다르다.
하회탈이 생겨난 전설도 있다. 먼 옛날 하회마을에 전염병이 자주 돌고 불도 자주 나 마을에 근심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하회마을에는 외모도 곱고 마음씨도 고운 허 도령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허 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지금 마을에 흉흉한 변고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이유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니 탈을 만들어 쓰고 춤을 춰 신의 노여움을 달래야 한다.
그러니 탈을 네가 만들어야 하는데 다 만들 때까지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면 안 된다. 만약 알게 되거나 엿보기만 해도 모두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고 일렀다.
잠에서 깬 허 도령은 산신령이 말한 대로 아무도 모르게 마을 어귀에 움막을 짓고 12개의 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허 도령을 사모했던 한 마을 처녀가 허 도령이 마을에서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백방으로 헤매며 허 도령을 찾아 나선 끝에 허 도령이 작업하던 움막을 찾았다.
때마침 허 도령은 마지막 탈인 이매 탈을 만들고 있었다. 허 도령을 부르며 움막 안으로 들어온 처녀와 눈이 마주친 허 도령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처녀도 허 도령을 죽게 한 죄책감에 부용대 높은 절벽 위로 올라가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허 도령이 마지막에 작업했던 이매 탈의 턱은 은 처녀가 허 도령을 훔쳐보는 탓에 미완성인 채로 남았다고 한다. 이후 하회마을 사람들은 허 도령과 처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매년 제사를 지내줬다. 하회탈은 이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 탈 쓰고 무탈 기원한 '하회별신굿탈놀이'
마을을 지키는 신을 북돋워 주며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일정 기간마다 펼쳐진 특별한 굿이 바로 '별신굿'이다. 이름 그대로 '별나고 특별한 굿'으로 동제와 별신굿 모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같다.
우리 조상들은 한해가 시작하는 정월대보름이면 수호신에게 올해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제사를 지냈다. 이를 '당제' 또는 '동제'라고 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이런 신앙적 의미에 더해 신분제와 농사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해소하는 축제다. 별신굿이 펼쳐지는 보름 동안은 신분과 성별, 재산과 관계없이 사회의 모순과 지배층의 위선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펼쳐지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대동,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마을굿이었다.
주민들은 풍농과 안녕이 마을을 지키는 동신에 달려있다고 믿었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신의 영험이 줄어든다고 생각해 일정 주기마다 정기적으로 굿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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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신명 나는 하회별신굿탈놀이 한판이 벌어지던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12월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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