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키드' 개봉 100주년 특별전

[이종길의 영화읽기]익살 연기, 고통스러운 시대를 헤쳐나가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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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1889~1977)의 유머는 우스꽝스러운 고통에서 비롯한다. 웃음이 고통스러운 인생을 헤쳐 나가는 힘이라고 믿었다. 남다른 아이디어로 현실적 슬픔과 아픔을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굶주림과 죽음조차도. CGV에서 개봉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7일까지 보이는 ‘키드(1921)’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희비극의 중심에는 채플린의 분신인 방랑자 찰리가 있다. 칫솔모처럼 조그만 콧수염과 굴뚝 모자, 헐렁한 바지, 털럭거리는 구두, 지팡이. 떠돌이이자 신사이고, 시인이면서 몽상가이며, 명랑하면서도 고독한 남자다.


그는 골목을 지나가다 갓난아이를 발견한다. 가난에 허덕이는 어머니가 부자 부모를 만나라고 리무진 안에 버렸는데, 그 차를 훔친 도둑들이 쓰레기통 옆에 두고 도망가버렸다. 찰리는 자기가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어설픈 육아 과정은 웃음을 자아낸다. 갓난아이는 낡은 부대로 만든 해먹에 누워 있다. 찻주전자 주둥이에 달린 고무젖꼭지를 빨아대며 우유를 먹는다.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찰리는 낡은 등나무 의자에 구멍을 내 아기용 변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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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만 해도 희극과 비극이 섞인 영화는 드물었다. 채플린은 애당초 ‘키드’를 드라마가 결합한 슬랩스틱 코미디로 만들 생각이었다. 친구이자 각본가 구베르너 모리스는 반대했다. "그런 건 가당치 않네. 형식이란 순수해야 해. 희극이면 희극, 드라마면 드라마. 두 개를 섞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아. 그렇다면 한쪽은 실패하고 말 거야." 채플린은 자서전에 당시를 같이 복기했다.


"나는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로 옮겨가는 것이 형식이 아니라 감정과 장면 배열에 관한 판단의 문제라고 말해줬다. 형식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누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술가가 어떤 세계를 생각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아무리 그것이 혼합물이라 하더라도 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키드’는 기본적으로 슬랩스틱과 감성 드라마를 결합한 새로운 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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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웃음은 반항을 가리키기도 했다. 자연과 역사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하다. 가난, 굶주림, 재앙, 전쟁, 감염병….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채플린은 더 비참하지 않기 위해 웃음을 유발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허망함 속에서도 미소를 보여야 이 삶의 비극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한 의지는 CGV에서 함께 상영 중인 ‘황금광 시대(1925)’에 잘 나타난다. 폭설로 길을 잃은 찰리는 우연히 오두막을 발견한다. 주인으로부터 쫓겨나지만, 눈보라에 밀려 종이 인형처럼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그때 금광을 발견한 짐이 들어오고, 주인은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다. 오두막에 남겨진 둘은 배고파 정신이 혼미해진다. 찰리는 신고 있던 구두 한쪽을 벗어 요리한다. 연한 윗부분을 짐에게 주고, 자기는 밑창을 먹는다.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 짐은 찰리를 통닭으로 착각하기에 이른다. 칼을 들고 뛰어다니며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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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로 나타난 처참한 순간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하기 위해 160여 명을 이끌고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헤맨 조지 도너의 일화가 그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열여덟 명에 불과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동료의 죽은 몸뚱이와 자신들의 신발을 먹으며 버텼다고. 채플린은 그런 상황에서까지 웃기는 장면을 떠올렸다. 풍자를 통한 단순한 시대 비판이 아니었다. 개인과 시대를 향한 절실한 호소였다. 몸에 밴 고독과 우수에 젖은 눈빛이 말해준다. 익살 연기에 녹아든 시대의 양심을….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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