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밀리는(framily)는 family와 friend를 합친 단어로 ‘가족 같은 친구’를 지칭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마음과 뜻을 나눈 친구는 곧 ‘제2의 나’(第二吾) 라고 까지 강조했다. 일러스트 = 오성수 기자

프래밀리는(framily)는 family와 friend를 합친 단어로 ‘가족 같은 친구’를 지칭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마음과 뜻을 나눈 친구는 곧 ‘제2의 나’(第二吾) 라고 까지 강조했다. 일러스트 = 오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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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자제로 청년 시절부터 뛰어난 문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1770년(영조 46년) 소과 초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박지원을 눈여겨본 영조는 그를 직접 침전으로 불러 도승지에게 합격 답안을 읊게 한 뒤 책상을 두드리며 문장을 음미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치권에서 앞다퉈 그를 찾았지만 당파와 가문을 먼저 따지는 관료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박지원은 2차 시험에 백지를 던지고 과거시험을 포기했다. 이후 독서와 소설 쓰기에 몰두한 박지원 곁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양반이었으나 서자, 양민과도 격의 없이 어울렸던 그는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을 잘 깨우쳐 준다면 비록 돼지 기르는 종이라도 나의 어진 벗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 충고해 준다면 비록 나무하는 아이라도 나의 좋은 벗”이라 말했다. 가족과도 같은 지기 홍대용에게는 마음과 뜻을 나눈 친구는 곧 ‘제2의 나’(第二吾) 라고 까지 강조했다. 과거는 포기했으되 학문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박지원에게 친구는 가족이자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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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밀리는(framily)는 family와 friend를 합친 단어로 ‘가족 같은 친구’를 지칭한다. 박지원은 보장된 벼슬길을 포기한 대가를 이내 혹독한 가난으로 치러야 했다. ‘기름과도 같은’ 명예와 권세를 포기한 대신 밝은 눈으로 벗을 찾았다고 호언했지만, 쌀이 떨어져 일주일을 내리 굶은 박지원이 친구에게 남길 수 있는 말은 시가 아니라 돈을 빌려달라는 읍소뿐이었다. 그의 어려운 형편을 헤아린 벗 홍대용은 소 두 마리, 농기구 다섯 가지, 공책 스무 권과 돈 200냥을 흔쾌히 보내며 “산중에 계신 지금 밭을 사서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그 일에 보태 쓰세요. 그리고 거친 논밭 일을 하더라도 공이 할 일은 책을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전했다. 훗날 가족보다 자신을 더 곡진히 아꼈던 벗 홍대용의 부음을 들은 박지원은 그와 함께 즐겼던 음악을 일체 끊어버리고 갖고 있던 악기를 모두 남에게 줘버린다. “집기가 깨지면 새것으로 다시 바꾸고, 의복이 찢어지면 꿰매면 되고, 아내를 잃으면 두 번, 세 번 장가가면 되지만, 지기를 잃은 슬픔은 그렇지 않다”는 박지원의 문장은 오늘날의 프래밀리보다 더 가깝고 간절한 우정을 품고 있다.

용례
A: 이번 주말에 시간 어때. 우리 집에서 치맥에 영화 한 편, 고?
B: 안 돼. 볼일 있어서 강원도 다녀와야 해.
A: 이 시국에 갑자기 강원도는 왜?
B: 친구 어머님이 옥수수 수확하는데 일손이 부족하신 것 같더라고. 요즘 인건비도 비싸고 하니까 친구랑 같이 갔다 오려고.
A: 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친구일세. 완전 프래밀리구만. 잘 다녀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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