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영화적 거리두기' 류승완의 연출 격상됐다
영화 '모가디슈' 간결한 표현으로 인물들의 내면 깊이있게 보여줘
1991년 소말리아서 벌어진 남북 외교관들의 탈출 실화 다룬 영화
"남북관계 영향 미치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평화·즐거움에 집중"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91년 1월 벌어진 모가디슈 주재 외교관들의 탈출이다. 당시 소말리아는 혼돈의 땅이었다. 아이디드 장군이 이끄는 USC(United Somali Congress)가 바레 정권의 장기독재에 반기를 들었다. 서쪽에서 불붙은 시가전은 곳곳으로 확산했고, 대통령궁 외곽을 중심으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본격화됐다. 신상에 위협을 느낀 강신성 주(駐)소말리아 한국대사(극 중 한신성)는 군인과 경찰이 지키는 관저로 직원들을 피신시켰다. 그러나 무장괴한의 습격을 당했고, 구조기마저 떠나버렸다. 딱한 사정은 공항에서 만난 북한대사관 직원들도 매한가지였다. 여덟 번이나 무장강도의 침입을 당했다. 특히 전날에는 떼강도 스무 명이 들이닥쳐 부인과 아이들 목에 총을 들이대고 차량과 살림살이를 모조리 가져갔다. 강 대사는 김용수 북한대사를 설득해 이들을 관저로 데려왔다. 3박 4일을 함께 지낸 뒤 이탈리아 대사관의 도움으로 케냐 몸바사 공항으로 탈출했다.
강 대사는 1997년 퇴직 뒤 당시 경험을 토대로 소설 ‘탈출(2006)’을 펴냈다. 타국에서 뜨거운 인간애와 동포애로 남북이 화합하는 내용이다. 숙명적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는 외교 현실이라도 공동의 위기에 직면하면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것이 남북 관계는 물론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지론은 주인공 한신성 한국대사는 물론 북한대사들의 입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한 대사님, 부인께 잘 계시라는 내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
"한 대사님, 시란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시요?"
"시란 마음 밖에 직유로 있는 것보다는 마음 안에 은유로 있는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나는 그걸 소말리아에서 배우고 떠납니다."
류 감독은 ‘모가디슈’가 관객의 마음 안에 은유로 남길 바란 듯하다. 전작 ‘군함도(2017)’에서는 하시마의 실상을 충실히 재현하다 무리한 반전과 신파로 스스로 흐름을 깨버렸다.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이 단결하는 동기가 옅어질 정도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장기인 액션 연출마저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한다. 정부군과 반군이 격돌하는 위기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으며 남북한의 화합을 인내심을 가지고 응시한다. 서로 손을 맞잡는 순간에도 차분하게 인물들의 내면을 비춰 숙명적 한계를 가리킨다. 표현은 간결하지만, 의미는 더없이 깊어졌다. 류 감독은 "극적인 상황일수록 만드는 사람이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라고 말했다. "‘군함도’를 완성한 뒤 저 자신을 많이 돌이켜봤다. 제가 좋아한 게 무엇인지 되묻게 되더라. 영화를 만들면서 흥분하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다 보니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그가 보여준 결말은 사실에 가깝기도 하다. 소설 ‘탈출’에서 케냐 몸밧사공항에 도착한 한 대사와 김용수 북한대사는 다음과 같이 대화한다.
"한 대사님, 그간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공항을 나가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아닙네다. 여기서 헤어집시다. (…) 우리끼리 가겠습니다. 한 대사님, 우리는 지금까지 악몽에 있어 왔습니다. 이제 현실의 제 위치로 돌아가야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잘들 가십시오.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요. 그때까지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오."
부득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극히 짧다. 하지만 관객은 그들의 가슴에 스며든 두터운 사랑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 망측한 이념과 체제가 죄 없는 그들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낸 부산물이라는 사실까지. 분단된 남북 간의 엄연한 현실임을 인식하며 이전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는다. 물론 적잖은 이들은 불편해한다. 남북 관계가 불편해진 요즘은 더 그렇다. 그래서 남북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적잖게 난항에 빠지곤 한다. 류 감독은 담담한 표정으로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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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흥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남북 관계까지 신경 쓸 수 없는 노릇이라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 저는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베를린(2012)’, ‘베테랑(2015)’ 등이 크게 성공했으나 소위 ‘대박’을 노리고 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많은 관객이 찾는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데 있다. 우리 삶 속의 남북 관계다. 누구나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육로로 더 먼 곳도 여행하고 싶어 하고. 그게 전부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길 바라는데 자꾸 정치적 도구로 변질돼 안타깝다. 그렇다고 통일의 밑거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평화와 행복, 즐거움에만 집중한다. (…) 극 중 한신성 대사가 ‘때로는 진실이 두 개일 때도 있더라’라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살다 보니 제가 아는 사실과 다른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 자주 부딪히더라. 영화에 왜 담았는지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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