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수 모교 교사 사칭글에, '페미니스트' 사상검증까지
전문가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 "여혐·남혐 프레임, 이제 멈춰야"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사진=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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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에 대한 혐오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자신을 안산 선수 모교 교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페미(페미니스트)대장부' 등 안산 선수를 비방하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일부에선 안산 선수를 향해 "페미인지 아닌지 말하라"는 등의 무례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이 페미니즘의 의미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는 페미니즘을 남성에 대한 혐오로 인식하는 등 악마화하는 경향은 페미니즘에 대한 오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일 안산 선수가 모교인 광주 문산초등학교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X 됐다, 일하고 있는데 페미대장부 안산 온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이 게시물을 작성한 누리꾼은 자신을 교사라고 밝혔으나, 문산초 측은 외부인이 교사를 사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산초 측은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교육청에 감사를 요청했다.

앞서 안산 선수는 짧은 머리스타일과 여대 출신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일부 남성 위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숏컷은 90% 이상 확률로 페미", "페미는 극혐" 등 무차별 악플 테러를 당한 바 있다.


외신에서도 이번 논란을 보도하는 등 안산 선수를 향한 혐오 공격과 페미니스트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성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또다시 안산 선수를 '페미대장부'라고 칭하며 혐오 공격은 계속됐다.


자료사진.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에 대한 혐오 공격이 계속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에 대한 혐오 공격이 계속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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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선수에게 '페미니스트인지 밝히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4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안산 선수가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웅앵웅', '오조오억' 등 남성혐오(남혐)적 단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논란의 핵심은 머리카락 길이가 아니고 남혐 단어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산 선수를 향해 "안산은 답만 하면 된다. 페미인지 아닌지 한마디만 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웅앵웅', '오조오억' 등이 남혐 단어로 쓰인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웅앵웅'은 온라인에서 자주 쓰인 유행어로 '아무 말이나 중얼대는 것', '헛소리' 등을 표현한 말이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잘 안 들리는 영화 대사를 '웅앵웅 초키포키'라고 표현했고, 이를 미국 영화배우 토머스 맥도넬이 리트윗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조오억'은 '많다'라는 뜻으로, 역시 온라인상에서 유행해 광고에도 쓰이는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선 자신이 페미니스트인지 타인에게 공개할 의무도 없는데다, 페미니스트의 의미 자체를 부정적인 의미인 듯 사용하는 혐오 공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고 있다.


트위터 사용자인 20대 A씨는 "이제 와서 남혐 단어가 문제였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남혐 단어로 지목되기 전까진 많은 사람이 잘 써왔던 유행어"라며 "성차별이라고 비판받으니 갑자기 남혐 단어 사용이 잘못이었다는 둥 비판을 회피하려는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언제부터 페미니스트가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된 건지 모르겠다"라며 "마치 사상검증을 받듯 페미인지 밝히라니, 무슨 생각을 하든 개인의 자유지 왜 그걸 남한테 설명해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는 페미니즘 자체를 남혐으로 인식하는 등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페미니즘에 대한 오독이라고 지적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페미니즘을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으로 나누고 '나쁜 페미니즘엔 동의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은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불평등의 원인을 찾아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 같은 이분법적 사고와 평가로 접근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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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안산 선수에 대한 혐오 공격으로 페미니스트에 대한 공격, 안티페미니즘적 발화가 하나의 현상으로 드러났다. 이런 혐오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더이상 논쟁을 '여혐', '남혐' 프레임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20·30대 청년들의 이슈를 여혐·남혐 프레임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사회·정치적으로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청년들의 주체적 역할을 막는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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