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美·中·EU, 디지털화폐 경쟁…금융산업 뿌리채 흔든다
'뱅크런' 사태 촉발 우려…예치금 전환땐 손실 불가피
민간은행들 유치경쟁 밀려…리스크·신용관리에도 타격
효율·신속·보안은 강점
서류절차 생략…예금보호 가능
저소득층 진입장벽 철폐
재난지원금 정부가 직접 입금
중앙은행이 보고 있다
개인·기업들 세세한 거래 무제한 추적 가능해져
[아시아경제 김수환 기자] "미국 정치권은 디지털 달러 개발을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 비유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중국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하원 청문회에서 오는 9월 디지털 달러 발행과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할 것이라 밝히자 이에 블룸버그통신은 "우주 개발 경쟁의 금융판"이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앞서 중국은 이미 이달 초부터 자국민 1000만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화 시범 도입을 실시한 상황이다.
14일 유럽중앙은행(ECB)도 디지털 유로화 개발에 공식 착수하기로 했다.
각국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 도입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와 기업 등 수용자적 측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통 금융 산업 뿌리째 흔들릴수도"
디지털 통화 도입으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바로 금융 업계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통화가 도입되면 소비자들은 Fed 등 중앙은행에 개설된 자신의 계좌에 직접 접속하고 이곳에 예금을 저축할 수 있다. 이에 미국에서만 17조달러 규모의 예금을 굴리며 각종 수수료와 파생상품 운용으로 막대한 수입을 얻는 미 금융 기업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디지털 통화 발행은 중앙은행이 민간 금융기업과 같은 운동장에서 뛰며 직접 경쟁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공적 역할이 강한 중앙은행이 직접 소비자용 계좌 개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개입하게 된다면 각종 수수료 정책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이에 민간 기업은 소비자 유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미국 은행업계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BPI(Bank Policy Institute)는 "디지털 통화 도입이 민간 금융업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소비자들이 경제 위기 등 유사시 기존 은행에 예치된 현금성 예금을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로 ‘환전’하는 이른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촉발될 수도 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경제 위기 때 이런 상황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BPI는 "(소비자들이 예금을 중앙은행으로 옮기거나 디지털 통화로 환전하면) 기존 은행들은 대출 등 자산의 축소가 불가피해진다"며 "이는 디플레이션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들은 줄어든 자산으로 인한 수수료 수익 손실분을 만회하기 위해 대출 금리를 올리는 등 도리어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도 있다.
폴란드의 민간 경제연구소 오브저와토르는 "기존의 은행들이 개인과 기업에 대해 예금 금리를 높이는 등 당근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이 때 손실분 만회를 위해 대출 금리도 동시에 올리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민간 영역 위주의 금융시장 중심 축이 중앙은행으로 옮겨가면서 시장에 ‘정부 리스크’를 야기할 가능성도 커진다.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지급결제 및 시장인프라 위원회(CPMI)는 "중앙은행이 민간 기업보다 더 비효율적이라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동안 민간 영역이 집단지성을 통해 시장 리스크와 신용도를 관리해 왔지만 중앙은행이 개입하면서 리스크 관리의 비효율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재난지원금, 정부가 직접 입금도 가능해져
개인 소비자 입장에서 예상되는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통화가 소비자들의 주류 금융권에 대한 진입장벽을 대거 철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우 소비자들에게 일간 평균 1500달러의 예금 최소 보유한도를 지킬 것을 요구하며 이를 지키지 못하면 수수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디지털 통화가 도입되면 소비자들은 중앙은행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게 돼 이 같은 수수료 부담도 없어지게 된다.
앞서 레이얼 브레이너드 Fed 이사는 지난 5월 한 강연회에서 "2017년 기준 미국의 전체 국민 중 주류 금융권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18.7%에 달하며 은행 계좌조차 없는 국민은 5.4%에 달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들이 은행 계좌를 미보유하고 있는 이유로 은행의 최소보유한도 미충족, 과다한 은행 수수료 문제가 꼽혔다.
디지털 통화가 도입된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이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게 될 것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FDIC가 "디지털 통화는 주류 금융서비스에서 배제된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밖에도 온라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마트폰 등으로 은행 영업시간과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편리성은 정부의 각종 지원금 지급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앞으로 정부가 직접 개인에게 지원금을 디지털 통화로 지급해 복잡한 서류절차를 생략하고 더 효율적이고 신속한 지원이 가능해진다. 크리스탈리나 조지바 국제통화기금(IMF) 디렉터는 "디지털 화폐의 도입은 저소득층과 개도국에 중요한 생명선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의 경우 예상되는 변화는 디지털 통화를 통해 중앙은행을 거쳐 금융 거래를 진행하게 돼 신용카드 및 결제 수수료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영란은행(BOE)은 2016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자체 연구 결과, 디지털 통화의 도입으로 얻는 생산성 증대는 시장을 왜곡하는 세금 체계를 없애는 효과와 맞먹는다"고 전했다.
아울러 디지털 통화의 결제 효율성과 신속성은 다국적 기업의 국가 간 금융 거래에도 이점으로 작용한다. IMF는 2017년 보고서에서 "디지털 통화 도입은 더 신속하고 안전한 국가 간 금융 거래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전했다.
보안상 이점도 있다. 금융전문 분석기관 인베스토피디아는 "현금을 훔치는 것보다 디지털 지갑을 해킹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전했다.
현금은 한 번 도난당하면 추적도 불가능하지만 디지털 통화는 도난의 우려가 없고 중앙은행이 네트워크도 직접 통제하기에 보안성이 높다는 의미다.
특히 파산 위험이 있는 민간 금융기업에 현금을 예치하는 대신 중앙은행 네트워크를 이용해 디지털 통화를 예금하면 예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중앙은행, ‘빅브러더’될 수도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마냥 이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중앙은행이 개인들과 기업의 금융 거래와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포브스는 "개인과 기업들의 디지털 지갑을 중앙은행이 무제한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된다"며 "중앙은행이 소비자들의 구매 장소와 시간까지 다 들여다 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우려를 자아내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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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싱크탱크인 CNAS(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는 "중국 인민은행이 수십억 명의 중국인 소비자들의 금융 데이터 접근을 위해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로 정치적 의제를 실현하려고 한다. 이미 정부 관계자들이 공산당 이념 실현 도구로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할 방침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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