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회사 나와" vs "낡은 근무"…美 월가·실리콘밸리 재택 앓이
기업들 '사무실 출근 정상화' 숙제
월가, 이달 전 직원 사무실 복귀 명령
멘토링·협업, 원격으론 어려워
근로자들, 재택근무 위해 퇴사도 고려
스위스 UBS 등은 재택근무 '당근' 활용
페이스북·트위터는 평생 허용
'화이트 칼라'만 누리는 혜택 지적도
[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조현의 기자] "식당은 가면서 회사는 왜 못나오나? " VS "주5일 사무실 근무는 낡은 사고 방식"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확대되면서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일하는 방식을 놓고 노사가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회사는 모든 게 정상화된 만큼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 복귀를 서두르고 싶지만 지난 1년여간 이미 원격근무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곳곳에서 갈등과 잡음이 발생하고 있으며 저마다 내놓는 해법 또한 다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자 서둘러 재택근무를 도입했던 기업들은 이제 팬데믹 이후 어떻게 근무를 ‘정상화’해야 하는지 커다란 숙제를 안게 됐다.
◆"뉴욕 물가로 월급을 받고 싶으면 뉴욕서 일하라"=가장 먼저 사무실 정상화에 나선건 월가다. 백신 접종이 대중화되면서부터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은 7월을 기점으로 모든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명했다.
모건스탠리의 최고경영자(CEO) 제임스 고먼은 "식당에 갈 수 있다면 사무실도 나올 수 있다"며 "뉴욕 물가로 월급을 받고 싶다면, 뉴욕에서 일하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처럼 월가가 사무실 복귀를 주장하는 것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교육과 멘토링, 협업 등이 재택근무에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신입사원들이 원격으로 입사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며 "이들이 직접적인 멘토링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 술 더떠 사무실 확장에 나서는 기업들도 있다. 바로 구글과 애플이다. 구글은 오는 9월부터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무실 근무를 시작한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구글은 주정부로부터 새너제이 메가캠퍼스 건설 승인을 받았다며 향후 10년간 새너제이에 68만㎡ 크기의 사무공간과 4000여개의 주택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인 애플 역시 지난 5월 실리콘밸리 서니베일에 건물 6개를 추가로 매입했다. 이는 2800~3500명이 일할 수 있는 사무 공간이다. 애플의 이번 거래는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발생한 가장 큰 부동산 임대 거래로 꼽힌다. 향후에도 전통적인 사무실 근무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재택근무 안되면 퇴사한다는 직원들=하지만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근로자들은 쉽사리 재택근무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재택근무 비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출근 거부 현상마저도 나타나고 있다.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와 스티브 데이비스 시카고부스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이 구성된 공동 연구팀이 저술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이전 5.3% 수준이었던 근무시간 내 재택근무 비율이 지난해 5월 60%로 급증한 뒤 현재 40%를 웃돌고 있다. 지난해 말 백신 접종이 시작됐을 당시 50% 수준이었던 이 비율은 전 세계 4명 중 1명 가까이 1회 이상 백신을 맞은 지금까지 40~50%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비율을 20%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근로자들이 ‘급여 인상보다 재택근무가 더 좋다’며 퇴사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5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9%는 고용주가 재택근무를 제공하지 않으면 퇴사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당근’으로 활용하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근로자들이 선호하는 근로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UBS는 전체직원 7만2000명 중 트레이더, 지점근무자 등 사무실 근무가 필수적인 보직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에 대해 평생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했다. 씨티그룹도 일주일에 이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UBS의 이같은 방침은 채용시장에서 재택근무를 꺼리는 미국은행과 대비되는 것으로,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해석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SNS) 업체 페이스북은 재택근무를 앞으로도 영구히 허용하기로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우리는 지난 1년간 어디에서나 좋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특히 원격 비디오와 가상현실이 계속 진화함에 따라 대규모 원격작업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잭 도시가 이끄는 트위터와 스퀘어 역시 평생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생활용품 브랜드 도브,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등을 보유한 소비재 그룹 유니레버도 이에 동참했다.
앨런 조프 CEO는 "주5일 사무실 근무는 ‘매우 낡은 방식’"이라며 "절대 과거로 회귀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재택근무를 새로운 근무방식으로 정착시킨다고 밝혔다.
◆"생산성 증대" VS "화이트 컬러 전유물"=근로자들은 왜 이토록 재택근무를 선호할까. 미국 구직사이트 플렉스잡스가 지난 4월 2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4%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으로 출퇴근을 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이에 따른 ‘비용 절약’이란 답도 75%로 2위를 차지했다. 플렉스잡스는 "응답자 3분의 1 이상이 재택근무 시행 이후 연간 최소 5000달러를 절약했다"고 밝혔다. 반면 ‘가족이나 애완동물과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된다’, ‘자녀 양육을 할 수 있다’ 등 일과 가정의 양립과 관련된 답변은 각각 26%, 15%에 그쳤다. 집에서 일하면 가정과 가사 등 주위 환경에 관심을 빼앗길 수 있다는 기존의 우려를 뒤집은 것이다.
출퇴근 과정이 생략된 새로운 근무 방식은 생산성 증대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컨설팅 업체 글로벌 워크플레이스 애널리틱스가 직장인 202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재택 근무자는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한 달 평균 26시간을 추가로 일했다. 이는 미국 경제의 생산성을 5%가량 올릴 것으로 보인다. 블룸 교수 등 공동 연구팀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도입된 신기술이 경제적 이득을 제공할 것"이라며 "(재택근무로 인한) 최적화된 업무 배치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생산성을 올릴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재택근무가 고학력, 고임금 근로자들만 누리는 혜택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에서 4년제 대학 출신과 소득 상위 25%는 모두 60% 이상이 재택근무를 하는 반면 중졸 이하와 소득 하위 25%는 각각 1.2%, 28.8%에 그쳤다. 이른바 ‘화이트 칼라’라고 불리는 지식 노동자들은 온라인에서 업무를 하기 쉬운 반면 고객을 대면하는 마트 직원이나 건설 노동자, 환자를 돌보는 의료보건 종사자들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BBC는 "금융 및 비즈니스 관련 종사자 88%가 재택근무로 업무를 볼 수 있는 반면 교통 종사자는 3%, 농업 및 어업 종사자는 1%에 불가하다"고 했다.
업무 특성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재택근무를 위한 환경을 갖출 수 있느냐도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연간 수입이 10만달러 이상인 사람 중 가정에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컴퓨터가 있다는 응답은 92%에 달했지만 3만달러 이하인 사람 가운데는 59%에 그쳤다. 집에 인터넷이 설치됐다는 응답도 10만달러 이상에선 93%, 3만달러 이하에선 57% 수준이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연차 내고 프로필에 '파업', "삼성 망한 듯"… 내...
BBC는 "기술에 대한 접근권 차이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현의 기자 hone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