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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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수상도 그 직을 떠나면 고작 잘난 척하는 말재주꾼이었던 게 아닌가 여겨질 때가 많고, 장군도 부하를 잃으면 저잣거리의 보잘 것 없는 얘기 주인공으로 떨어지고 만다.'


영국의 문호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첫 장에 나오는 대목이다. 직함을 떼놓고 타인을 생각하기는 힘들다. 직함이 가진 영향력과 무게감은 부지불식간에 잠입한다.

한국에서 정치는 오랫동안 권력과 연관된 단어로 상징됐고, 카리스마나 후광 같은 이미지와 조응했다. 국회 회의장에서는 대체로 중진 의원들이 뒷자리, 초선 의원들은 앞자리를 채웠다. 어디서나 '자리'는 권력과 연동된다.


30대 제1야당 대표의 출현은 국가적 이슈다. 극단적으로 군인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병영국가 모습을 띠었던 것처럼, 국가 주요 리더 자리의 변화는 사회 전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직은 한참 어리지'라고 했던 이들은 장유유서의 강고한 질서를 너무 익히 알고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그 정도였었나'라며 달라진 세상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가 가진 본질적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직함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를 깨뜨렸다는 점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너 몇 살이야!'가 싸움의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 쓰이는 사회다. 나이가 곧 권력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 위계가 크게 흔들릴리야 없겠지만 균열이 간 것은 분명하고 미래의 궤도는 수정될 것이다. 적어도 '꼰대'가 더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은 틀림없어 보인다.


정치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받는다. 현실이 답답하고 팍팍할수록 대중은 신선한 새 공기를 원한다. 그는 10년째 정치판에 있었지만 '청년'이라는 새로움으로 어필했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는 한 번도 국회에 입성한 적이 없고, 보수 야권에서는 이 정부의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지 얼마 안 된 '정치 준비생'이 독보적이다. '0선'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새로움이 곧 희망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새 바람'이 불었지만 대중의 정치효능감은 낮기만 하다. 일시적인 마음의 활로를 위해 새로움을 소비만 해 왔는 지도 짚어볼 일이다.


정치는 이미지가 중요하지만 그 포장지 아래를 살피지 않으면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풀어야할 과제들은 차고 넘친다. 양극화, 지역 불균형, 취업난, 치솟은 집값, 기후위기 등 각자가 생각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단초를 어디서 찾아야할 지가 관건이다. 정치적인 면에서, 젊음은 물리적인 신체 변화 과정의 특정 시기일 뿐 아니라 현실을 바꿔내려는 패기와 순수한 태도로 규정될 수 있다.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직함도, 이미지도 본질은 아니다.


무엇보다 너무 큰 기대는 반복되는 실망을 낳는다. 수십년간 고착돼 온 한국 사회의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단기간에 변화가 크게 체감되기 어렵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옳고,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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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울타리로서의 초기 단계 국가 역할을 넘어선 이후에는 정치가 개개인의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행복은 지극히 많은 요소들의 총합이다. 한때를 풍미했던 '혁명'의 언어들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존재하지 않는 도깨비 방망이의 한 방을 바라보기 보다는 꾸준한 저축에 마음을 두는 것이 낫겠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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