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계에 큰 이슈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작품 기증과 관련된 것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회장의 컬렉션이 유족에 의해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눠 기증되면서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우선 2만3000여점이라는 작품의 방대한 양이 놀랍고 3조원이라는 감정가액 역시 놀랍다. 이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이 기증됐다. 이로써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2년만에 소장품 1만점 시대를 열게 됐다.


여기서 잠깐 재미있는 생각을 해보자. 숫자를 제외하고 기증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필자는 서세옥·최만린 작가의 작품 기증 과정을 직접 추진했다. 예술가가 평생 살아온 지역에 거의 모든 작품을 기증하는 고귀한 일이었다. 이들 작가는 성북구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인물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작품의 수량과 가격이었다.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성보다 성적과 등수에 민감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숫자로 모든 것이 판단됐다. 학점과 영어 점수가 중시되는 가운데 사회인이 됐다. 이후에도 성과는 주로 정량평가로 이뤄지고 있다. 하물며 회사 가는 길조차 버스 노선이나 소요 시간으로 설명된다. 그 사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세세한 것들에는 그리 관심 갖지 않는다.

건강 역시 수치로 결정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하다. 스포츠에서도 페어플레이보다 기록에 의해 일등이 정해진다. 책 내용보다 판매량으로 인기작가가 결정된다. 우리는 모든 경쟁에서 숫자로 최고가 결정되는 숫자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에게도 숫자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됐다. 작품 가격은 작품의 크기를 나타내는 호수로 매겨진다. 비싸게 거래된 작품의 작가는 더 유명해진다.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에게 피카소나 모네는 근원 김용준이나 소전 손재형보다 더 친근한 이름이 됐다. 숫자로 환원된 인식이 기저에 우리의 역사보다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한국의 작가나 수장가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환기나 최근 작고한 김창열 작가는 작품들이 경매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대중에 인지도 있는 작가 반열로 오르게 됐다. 숫자에서 승리한 소수의 예술가를 제외하면 많은 작가가 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하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이들의 작품은 비싸게 거래되지 않는다. 많이 다뤄지지도 않았다. 결국 작품에 숫자를 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미술계는 드물게도 숫자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숫자 너머 기증에 더 많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위창 오세창, 간송 전형필처럼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선인들이 근대 역사에 적지 않다는 것, 오래 전부터 수정 박병래, 동원 이홍근 등 수장가들이 국립 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해오고 있었다는 것, 근현대 예술가들이 고유 자산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기증 덕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지키는 사람과 만나고 그의 정신적 여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숫자를 지우고 보면 다른 가치와 마주하는 기회가 생긴다. 예술이든 사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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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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