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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끊어져 가는 모습 중계하듯 보고"…깔리고, 으스러진 '청년 노동자'

최종수정 2021.05.12 09:32 기사입력 2021.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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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환경서 혼자 작업하다 목숨 잃은 청년 노동자들
'김용균법',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뒤로도 산재 끊이지 않아
2020년 산재 사망 노동자 수 총 882명
"내 동생은 '악' 소리 못 내고 즉사했을 것" 유족들 분노
전문가 "다수 노동자들 여전히 위험 노출돼"

고(故) 이선호 씨 사고가 벌어진 경기 평택항 부두 FRC(개방형 컨테이너) 모습. / 사진=고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고(故) 이선호 씨 사고가 벌어진 경기 평택항 부두 FRC(개방형 컨테이너) 모습. / 사진=고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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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깔리고, 끼이고, 치여 으스러졌다. 지난 2016년 이후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 노동자들의 사인(死因)이다. 이들은 모두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가 쓰러졌다.


지난해 '김용균법'에 이어 올해 '중대재해처벌법' 등 산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입법이 이뤄졌으나 여전히 미흡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해 연간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오히려 전년보다 늘었다.

유족과 시민들은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언제까지 젊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어야만 하느냐는 성토가 나온다.


300㎏ 컨테이너 깔려 숨진 故 이선호씨


지난달 22일 경기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고(故) 이선호(23) 씨는 FRC(날개를 접거나 펼 수 있는 개방형 컨테이너)에서 혼자 작업을 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그는 FRC의 한쪽 날개에서 나무 합판 조각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작업하던 지게차가 컨테이너 날개를 접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이 씨 쪽 컨테이너 날개가 접히면서 쓰러졌다. 무게 약 300㎏가량의 물체가 이 씨를 덮쳤고, 이 씨는 그 밑에 깔렸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수신호 담당자 등이 배치되지 않았고, 이 씨는 안전 장비도 지급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FRC 근무가 처음이었던 이 씨는 사전에 안전 교육도, 매뉴얼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지난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린 텅 빈 이선호 씨 빈소 사진. / 사진=트위터 캡처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지난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린 텅 빈 이선호 씨 빈소 사진. / 사진=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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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사고를 당한 뒤로도 응급 조치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의 부친인 이재훈 씨는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고 직후) 현장 책임자는 119에 신고하지 않고 윗선에 보고부터 했다"며 "같이 있던 외국인은 119에 신고하라면서 아들을 깔고 있던 날개를 들려고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인간의 극과 극이 드러났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직원들은 현장에서 숨이 끊어져 가는 아들 모습을 중계하듯 보고했다"며 "너무 참혹하고 잔인하다"고 분노를 쏟아냈다. 이재훈 씨 설명에 따르면 이 씨는 300㎏ 짜리 물체에 깔린 채 수십분 가량 현장에 그대로 방치됐고, 결국 숨졌다.


기계에 끼이고 열차에 치여…끊이지 않는 청년 노동자 비극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혼자 일하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12월에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故) 김용균 씨가 혼자 작업을 하던 중 사망했다. 김 씨는 당시 어두운 발전소 안에서 컨베이어벨트 밑에 쌓인 석탄을 긁어모으다 기계에 끼어 숨졌다.


지난 2016년 5월에는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직원이던 19세 김 군이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혼자 정비하던 중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19년 5월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승강장에 시민들이 쓴 '구의역 김군' 3주기 추모의 메모가 붙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9년 5월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승강장에 시민들이 쓴 '구의역 김군' 3주기 추모의 메모가 붙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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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씨 사고 이후 국회는 지난 2018년 12월26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위험성·유해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 금지 및 안전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지난 1월8일에는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같은 입법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사망자는 총 882명으로 전년(2019년) 대비 27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 수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아들 사지로 몰았다는 죄책감 들어" 유족들 분통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재로 자녀, 동생을 떠나 보낸 유족은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자신을 이 씨의 둘째 누나라고 밝힌 누리꾼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쓴 글에서 "(이 씨는) 자기 용돈 자기가 벌어서 부모님께 손 안 벌리려고 알바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비통한 심경을 밝혔다.


이어 "가족 먼저 챙길 줄 알고 아픈 큰 누나 잘 챙기는 그런 착한 동생이었는데, 사측에선 책임자가 계속 지시한 적 없다고 발뺌한다"라며 "안전모 안 쓴 우리 동생 탓을 한다. 안전모(를) 썼어도 300㎏ 넘는 무게가 쓰러졌으면 우리 동생은 '악'소리도 못 내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019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열린 김용균 씨 3차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과 피켓과 국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9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열린 김용균 씨 3차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과 피켓과 국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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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의 부친인 이재훈 씨는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들을 강인하게 키워보려고 했는데 제가 아들을 사지로 몰았다는 죄책감에 많이 힘들다"며 "더 이상의 산재 사망사고는 이번 일이 마지막이길 희망한다. 관계자들은 두 번 다시 희생자가 안 나오게 잘 해달라"고 촉구했다.


시민들도 산재로 인해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을 막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 제조업체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는 주부 A(58) 씨는 "노동자 사망 뉴스를 볼 때마다 현장에서 일하는 아들 생각이 나서 언제나 마음을 졸인다"라며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일터로 보낼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회사원 B(32) 씨는 "언제까지 운영 비용 절감을 위해 20대 청년들이 희생 당하는 일이 반복되어야 하나"라며 "산재 재발 방지를 위한 더 엄격한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촉구했다.


전문가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근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여러 법들이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돼 불리한 노동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단순한 법의 적용을 넘어, 노동자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근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실제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문제가 있는 요소들을 잘 수렴해서 현실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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