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이용구 조사' 100일 흘려보낸 경찰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오늘(27일)로 벌써 94일째다. 수사관도 무려 13명이나 투입됐다. 연쇄 살인범을 뒤쫓는 일도 아니고, 대규모 마약사범의 소탕 작전도 아니다. 술 취한 승객이 택시기사를 폭행한 지극히 평범한 사건이다. 평소 형사 한 명이 1~2주 정도면 검찰 송치까지 끝낼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엔 10여명의 형사가 달라붙어 세 달이 넘도록 낑낑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특이점을 굳이 찾자면 폭행을 가한 승객이 차관급 고위 관료라는 점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고 이후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낸 현 정권 실세 중 한 사람,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당사자다.
사건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이 차관은 지난해 11월6일(당시 변호사) 술을 마시고 택시로 귀가하던 중 잠이 들었고, 목적지인 서울 서초구 집에 도착해 택시기사가 깨우자 기사의 뒷덜미를 잡고 흔들며 욕설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범으로 체포될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두 사람이 합의를 한 데다 범행을 입증할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는 이유로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종결 처리했다.
그러나 당시 택시기사가 이 차관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블랙박스 영상을 담당 경찰인 서초경찰서 A경사에게 보여줬지만 "못 본 것으로 하겠다"며 뭉갠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봐주기 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은 지난 1월24일 "수사관이 영상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며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을 꾸려 뒷북 조사에 나섰고, 그로부터 100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A경사가 블랙박스 영상을 경찰서 상관에게 보고를 했는지, 내사종결 과정에서 이 차관의 청탁이나 부정한 방법이 동원됐는지를 밝혀내면 될 일이다. 조사단장은 수사·형사 경력만 2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나머지 10여명도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수사관들이다. 수일 내 끝날 것 같았던 조사는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조사단은 "관련 자료에 대한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속성보다는 정확성이 우선이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 중이다.
조사의 진정성도 의문이다. 경찰은 피해자인 택시기사는 진상조사단이 꾸려진 바로 다음 날(1월25일) 직접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했다. A경사와 서초서 과장, 서장 등 상관들에 대한 조사도 모두 마쳤다. 그러나 폭행 당사자인 이 차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직접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핵심 분석 대상인 이 차관의 휴대폰은 진상조사단이 꾸려진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임의제출 방식으로 건네받아 들여다봤다고 한다. 경찰이 정권 눈치를 살피며 이번 사건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비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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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수사 종결권’을 손에 쥐었다. 올해는 ‘책임 수사’의 원년이다. 경찰이 권한에 걸맞은 자립적 수사기관으로 안착하려면 국민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데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권력 눈치를 살피는 과거의 행태를 반복한다면 개혁의 칼날은 언제든 경찰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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