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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조선의 책 중 중국에서 간행된 것은 거의 없으나 오직 동의보감(東醫寶鑑)만은 널리 퍼져 있다."


1780년 조선의 실학자로 유명한 박지원이 베이징에 파견된 사절단을 따라가 작성한 열하일기의 내용 중 일부다. 당시 동의보감은 베이징의 서점마다 없는 곳이 없었고, 25권에 이르는 전권이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고 알려져있다. 1661년 청나라 사절단이 간곡히 동의보감을 요청해 조선에서 전체 사본을 보내준 이후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동의보감의 인기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대단했다. 조선과의 외교를 전담하던 대마도의 사절단들은 1613년 동의보감이 편찬된 직후부터 판본을 보내줄 것을 간청하기 시작해 50년에 걸쳐 끊임없이 간청한 끝에 1663년 결국 판본을 제공받는 데 성공한다.


중국과 일본이 이처럼 동의보감을 갖길 원했던 이유는 당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주요 전염병의 관찰기록과 치료법이 상세하게 나온 유일한 의학 서적이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는 천연두, 성홍열, 콜레라 등 당시 인류를 위협하던 최악의 전염병들에 대한 온갖 치료방법과 증상들이 집대성됐다.

특히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이 1590년 광해군이 천연두에 걸렸을 때 직접 치료를 담당하고 완치시킨 경험이 있어 더욱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게 됐다. 당시 천연두는 동아시아 3국은 물론, 전 세계를 위협하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특히 청나라는 황족들까지 연이어 천연두로 사망할 정도로 매우 심하게 퍼진 상태였다.


천연두에 걸렸던 사람의 고름, 딱지 등을 흡입해 면역을 얻는 세계 최초 치료법인 ‘인두법’ 자체는 중국 명나라에서 만들어졌지만, 명나라와 청나라 간 왕조교체기의 혼란 속에 의료체계와 기록 등이 많이 소실된 상태였다. 소실됐던 의료기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동의보감 덕분이었다. 인두법은 이후 청나라를 거쳐 인도와 이란, 터키 등으로 전파됐고, 1721년 터키의 영국대사관을 통해 런던으로 건너간다. 1796년 우두법을 발명한 에드워드 제너도 앞서 영국에 전파된 인두법을 통해 우두법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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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전 세계를 구한 이 귀중한 자료는 임진왜란으로 국가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천하의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조선 의원들의 뚝심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40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의료 강국인 데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음을 감안하면, 백신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거리는 현 상황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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