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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인의 삶, 기억을 잃어가는 존재에 대한 영화 '더 파더'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최종수정 2021.04.19 06:00 기사입력 2021.04.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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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당신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을 꺼내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장면·묘사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더 파더' 스틸 이미지./사진=판씨네마 제공

영화 '더 파더' 스틸 이미지./사진=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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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영화를 비롯한 소설, 연극, 드라마 등 다양한 예술과 콘텐츠를 접하는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도 있지만 이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 무엇보다 그 의미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접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은 현실의 사고를 잠시 멈추고 이야기 속 한 구성원이 되어서 타인이 겪는 일을 함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더 파더'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관객의 거리감을 최대한 좁혀 이 둘이 완전히 동화되기를 시도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이 연출한 '더 파더'는 치매를 앓는 노인의 정신적 혼란을 다룬 작품입니다. 딸 앤의 보살핌을 받으며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내는 앤서니가 치매로 인해 점점 기억을 잃고 혼란스러움을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앤이 앤서니를 급하게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아버지를 혼자 보살피기 버거웠던 앤은 집에 새 간병인을 들여오는 문제로 앤서니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앤이 볼 때 앤서니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그는 자신이 혼자 있어도 될 정도로 건강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간병인이 자신의 시계를 훔쳤다면서 그런 도둑을 집에 들일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앤은 '욕조 밑에 찾아봤어요?'라고 익숙한 듯 묻습니다. 앤서니가 낯선 사람이 집에 왔을 때 시계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앤은 끝내 자신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됐고, 이 때문에 곧 파리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채 집을 나섭니다.


영화 '더 파더' 스틸 이미지./사진=판씨네마 제공

영화 '더 파더' 스틸 이미지./사진=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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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집에 낯선 인기척이 느껴지고 앤서니의 집에 모르는 남자가 찾아옵니다. 누구냐고 묻는 말에 남자는 앤서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죠. 심지어 그는 자신이 앤의 남편이고, 결혼한 지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말합니다. 뒤늦게 집에 온 앤의 모습 역시 낯선 얼굴로 바뀌어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길 하는 이들을 마주한 앤서니는 충격과 혼란에 잠기게 됩니다.

혼란을 느끼는 것은 관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철저히 앤서니 한 사람의 시점을 따라가도록 구성되어 있고, 관객들에게 사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은 앤서니가 아는 만큼만 알게 됩니다. 주변을 이루는 것들이 불명확해지면서 앤서니는 결국 자신이 누군지 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관객 역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관객을 긴장감과 불안에 빠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 파더'는 일종의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는 보통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누가 범인인지를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탐정물, 형사물처럼 범인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나와 고군분투하는 영화가 스릴러 장르의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로는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변영주 감독의 '화차' 같은 작품을 들 수 있습니다.


반면, '더 파더'는 스릴러 장르의 전형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있는 영화입니다. '더 파더'에는 애초에 사건의 최종적인 갈등을 해소할만한 '범인'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일도 벌어지지 않죠. 영화는 앤서니의 의식 자체를 영화의 플롯으로 구성하면서 범인의 존재 없이도 관객들을 시종일관 긴장에 휩싸이게 합니다. 굳이 이 영화에서 범인을 찾자면 기억을 잃어가는 앤서니라는 존재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이 같은 플롯을 통해서 앤서니가 느끼는 감정을 관객들도 고스란히 느끼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직접 느끼는' 위치에 관객을 놓이게 하면서 치매를 앓는 노인의 삶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화 '더 파더' 스틸 이미지./사진=판씨네마 제공

영화 '더 파더' 스틸 이미지./사진=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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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는 점점 더 주변 상황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집을 떠나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요양병원의 구조는 놀랍도록 앤서니의 런던 집과 비슷한 구조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창문이 있는 위치, 침대와 장롱, 의자 심지어 액자가 걸려있는 위치까지도 비슷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이 모두 앤서니의 상상에서 비롯한 일은 아니었는지, 관객 또한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영화는 치매 환자가 겪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만, 특정한 상황에 국한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앤서니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누구든 겪게 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영화는 앤서니를 연기한 배우 '앤서니 홉킨스'의 이름을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는 허구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와 현실이 분리되지 않다는 점을 넌지시 내포하고 있습니다.


앤서니는 결국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는 끝내 아이처럼 눈물을 터트리고 맙니다. "엄마가 보고싶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만 같아..." 간병인에게 안겨 흐느끼는 앤서니의 모습에서 관객은 시간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연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더 파더'는 앤서니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 즉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기억은 희미해지며, 결국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당연하면서도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은 진리를 또렷하게 응시하는 영화입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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