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의 책섶] 팬데믹 시대, 인문학 속에서 찾는 ‘정신의 백신’
인공지능과 흙
현실극복을 위한 인문학 속 ‘상상력 백과사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오늘날 인공지능(AI)과 유사한 ‘황금비서’를 노래한다. 살아있는 소녀와 똑같은 외형에 감정을 지닌 지능과 음성, 그리고 힘과 불멸의 신들에게 배운 작품도 알고 있는 이 존재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 서비스의 집약체와 흡사하다. 사진 = 영화 Ex Machina 스틸.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오늘날 인공지능(AI)과 유사한 ‘황금비서’를 노래한다. 살아있는 소녀들과 똑같은 외형에 감정을 지닌 지능과 음성, 그리고 힘이 장착된 데다 불멸의 신들에게 작품도 배워 알고 있는 이 존재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 서비스의 집약체나 다름없다. 구글의 어시스턴트, 아마존의 알렉사, 애플의 시리와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 역할을 ‘음성’에 담았고, 빅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머신러닝 기능은 불멸의 신들에게 ‘작품’을 배워 탑재됐다. 여기에 카메라·3D센서·마이크로 사람의 표정과 음성을 분석해 감정을 읽어내는 인식기능은 소녀의 외형 속 ‘감정을 지닌 지능’으로 갖췄으니 호메로스는 황금비서를 통해 오히려 현재 기술보다 앞선 AI 완전체 로봇을 그려냈던 셈이다.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어 낸 고대 신화적 상상력은 호메로스의 황금비서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에 와선 상상과 현실을 결합한 실재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으로 폐허가 된 삶과 터전을 회복하기 위해 르네상스인들은 고대의 상상력을 소환해 현실의 신체조차 물질화시킬 만큼 대안마련에 집중했다. 원과 정사각형의 가운데에 알몸의 자신을 놓고 신체 비율을 탐구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행보는 육체 속에 과학과 예술, 철학과 문학, 그리고 종교까지 모으는 르네상스인의 직관적 자기 인식 그 자체로 풀이된다.
여기에 르네상스인들의 ‘자발적 변신’을 향한 욕망은 때 아닌 코수술 열풍으로 이어졌다. 퇴폐를 넘어 성에 개방적이었던 르네상스 시대, 매독은 피할 수 없는 불청객이었다. 온몸에 발진이 시작되고, 무감각해진 피부가 이내 궤사하면서 코가 내려앉는 매독의 증상은 곧 성적 타락의 낙인처럼 통용됐다. 이를 복구하고자 고안된 코 재건수술은 이미 15세기 초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술법이 개발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11세기 페르시아의 아비첸나, 그리고 고대 인도의 수슈루타의 기술이 다양하게 접목된 코수술은 처음 볼과 이마에서 피부조직을 떼어내 코에 이식하는 방식에서 팔의 피부를 이식하는 단계까지 정교화된다.
당대 이탈리아 해부학자 가스파레 탈리아코치는 자신의 저작 ‘이식재건성형론’에서 “우리는 자연이 선사했지만 운명에 의해 빼앗긴 부분을 복원하고, 재건하고, 온전케 한다”며 “이는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을 회복시켜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매독 환자를 위한 코수술을 단순한 미용의 영역에서 육체의 원형 회복을 위한 재창조이자 이상적인 형상을 위한 재건의 영역으로 승화시켰다.
물질화된 육체는 시간이 흘러 곧 초현실주의를 만나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인간이 밀랍인형과 같은 유사인간을 보고 느끼는 호감과 비호감 그래프인 ‘불쾌한 골짜기’를 발표했다. 중세의 패션인형과 근대의 마네킹을 거쳐 구현된 유사인간에 대한 불쾌감은 인간의 모방품이자 대체물에 대한 공포가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혼재된 유사인간에게서 찾아온 불쾌감은 곧 혼란 속 쾌감으로 변이되고, 이는 최근 콘텐츠를 통해 소재로 각광받은 좀비를 통해 신선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흙은 인문학 속에서 채굴한 상상과 현실을 잇는 실재를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소환하고 해석한다. 작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은 인류를 향한 경고이며, 이는 흑사병 이후 인간 회복을 위해 정신과 관념 속 인간성이 아닌 일상에서 자기 몸을 재발견했던 르네상스인의 관점이 코로나19를 겪는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일상화된 마스크, 생활이 된 거리두기 등의 코로나19의 상흔으로 둔감해진 우리가 ‘감각하는 몸’을 되찾는 일은 육체의 백신에 앞선 정신의 백신이자 치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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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흙/김동훈/민음사/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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