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조영신 특파원] 명나라가 쇠퇴할 무렵 변방 오랑캐 누루하치가 여진족을 통합, 1616년 후금(청)을 세웠다. 당시 명은 내부적으로는 환관 정치로 병들고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오이라트 및 타타르(몽골),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정치적 혼란을 겪던 명은 결국 내부 반란으로 무너졌다. 만주의 신흥 세력 후금은 어렵지 않게 중국 대륙을 손아귀에 넣었다.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조선은 당시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이라는 수난을 겪었다.


청이 건국된 지 200여 년 후 동아시아 국제 정세가 다시 요동쳤다. 차(茶) 무역을 원했던 영국 등 서구 열강이 대륙으로 밀려 들어왔다. 차 무역은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청의 국운은 아편전쟁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2년 만인 1842년 청은 백기를 들었고, 영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홍콩 땅이 영국으로 넘어갔고, 광저우, 닝보, 상하이 등 6개 항구의 빗장이 풀렸다.

[특파원 칼럼] 동아시아 국제 정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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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륙 쟁탈전이 벌어졌다.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와 톈진조약(1858년)을 체결했고, 1860년에는 이들과 다시 베이징조약을 맺었다. 1884년 프랑스와 싸워 베트남 종주권을 잃었고, 1894년엔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패했다. 청은 서구 열강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베이징조약이 체결된 지 17년 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동아시아 정세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외척의 세도정치에 병든 조선은 그저 서양 선박의 접근만 막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청 멸망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바로 공산당이다.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해 남과 북을 가르는데 한몫을 했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ㆍ당 교체기 고구려 침략, 원 건국후 고려 침략 및 내정간섭, 명ㆍ청 교체기 정묘ㆍ병자호란 등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대륙에 힘의 불균형이 생기면 한반도에도 그 불똥이 튀었다.


중국 지도부가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에 이어 올해엔 홍콩 선거법 개정을 강행했다. 미국 등 서방 진영의 우려나 압력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2035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중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도 공식화했다. 전체 GDP 규모로 보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의미다. 중국 몽(夢)은 경제에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양자통신, 우주탐사, 반도체 등 과학기술에 대한 야심도 드러냈다. 자립과 자강을 통해 미국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군 현대화도 이미 14억 인민에게 약속했다. 중국식 마이 웨이다.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미국이 단단히 제동을 걸 모양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진영이 결집하는 등 냉전 종식 이후 다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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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중국 대륙에 힘의 불균형이 생기면 그 파장이 한반도까지 미쳤다. 또 역사를 곱씹어 보면 중국은 믿어서는 안되는 국가다. 힘이 생기면 주변 국가나 민족을 침략하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 운영 체제가 우리와 다르니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중국의 변화에 눈을 감고, 귀를 닫아서 안된다. 중국의 변화를 알아야 동아시아 국제 정세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베이징=조영신 특파원 as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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