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공정’을 훼손한 LH사태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 확산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해당 지역민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여당은 재발방지책을 쏟아내는 등 진화에 나선 상태다. 일부에서는 ‘준공무원들의 일탈행위가 어디 LH 뿐이겠냐’는 자조섞인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여파는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중요한 가치가 된 ‘공정’이 훼손됐다는 점에서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책결정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정보를 공익이 아닌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활용한 데 따른 분노가 큰 것이다. 공적 정보를 편취해 출발선이 달라졌다는데 부당함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의 불평등은 감수할 수 있어도 불공정한 과정, 그에 따른 결과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요즘 20~30대의 인식이다.

특히 현 정부는 ‘공정’ 가치를 출범 초부터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박탈감도 클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이를 LH사태에 대입해보면 불평등한 기회는 불공정한 과정으로 이어졌고 결과 역시 정의롭지 못하게 된 셈이다. 이미 공급 감소 시그널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시장은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양분됐다. 공정한 과정 없이 결과가 극단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LH사태는 불 난데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공정’은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했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소득과 자산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과정의 공정성’은 더욱 민감해졌다. 기업의 성과급은 과거 같으면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최근엔 지급 기준을 놓고 회사대표가 진땀을 흘리며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가치는 달라졌지만 제도나 인식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정부와 여당이 어려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추진중인 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당정은 선별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예산안까지 만들어 국회 논의를 준비중이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최대한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며 사각지대 해소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정작 정부안이 발표된 이후 크게 들리는 건 불만의 목소리다. 세금 내지 않는 노점상에게 50만원을 지급한다는 방침은 농민, 전세버스 기사들까지 재난지원금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달라는 항의로 이어졌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세금을 내는 농민과 기사들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공정치 못하다는 것이다. "농민도 세금을 낸다"는 볼멘소리는 선별대상이 보다 공정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사회 분위기와 달리 ‘공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정권 초 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부 입김이 통하는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는 넘쳐난다. 전문성 보다는 제 식구 챙기기에 집중하면서 공정사회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AD

공정은 희망과 연결된다. 언젠간 잘 살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이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공정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분노와 불만은 좀처럼 잦아들기 어렵다. 성장엔진을 멎게하는 악재가 될까 걱정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