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정말 너무 힘들어요" 정릉 가스폭발 주민들, 코로나에 생계 위기까지
"쾅! 소리 나고 땅 막 흔들려…몸만 빠져나왔다"
"장애인 가족 돌보려고 직장 관둬" 코로나 상황에 엎친 데 덮쳐
취재진 폭발 현장 직접 가보니…복도 외벽 통째로 날아가 '아찔'
성북구민들 '따뜻한 온정' 줄이어…이재민 임시거처에 반찬 등 지원
지난 6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가 발생한 6층의 모습. 복도 외벽을 막아주는 담벼락이 통째로 사라졌다.사진=김소영 인턴기자 sozero815@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김소영 기자] "사고 났다고 임대 아파트 어쩌고 말하고, 너무 분하고 슬프다"
지난 6일 오전 7시45분께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15층짜리 아파트에서 가스폭발로 추정되는 불이 나 약 2시간 만에 꺼졌다. 이날 사고로 주민 9명이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연기흡입과 허리통증 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재 사고가 일어난 지 이틀 뒤인 8일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날 사고로 입은 각종 피해보다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임대아파트라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보상을 원하고 있다는 헛소문과 보이지 않는 차별적 시선에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또 다른 주민은 자신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이 모두 장애인으로 가족을 돌보기 위해 생계를 포기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실상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취재진이 직접 사고 현장을 둘러본 결과 현장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아수라장이라는 표현도 부족했다. 복도식 아파트 외벽은 아예 통째로 날아가 자칫 발을 잘못 내디디면 그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소중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사고 현장인 자신의 집에 들어가 음식이며 옷이며 챙겨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소중한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사고로 인해 보상금을 원한다거나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날(6일) 일어난 사고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신고했다고 밝힌 주민 A(68·여)씨는 "(임대아파트에는) 젊은 사람들도 청년청약으로 많이 살지만 여기는 거의 노인들이 많이 살아요. 그래서 사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그런 아파트입니다"라면서 "그런데 방송에서 이 일로 임대 보상 등 그런 얘기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게 참 너무 슬퍼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A 씨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사람이 있고 없고 하는 건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런데 그거를 비난하면…. 나는 여기 사는 입장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못할 것 같거든요"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게 참… 가슴이 아파요. 그걸 들으니까"라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이어 "다 사는 건 그게 그거에요. 내 집이면 너무 행복하고, 내 몸담고 내가 사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 씨는 신고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나는 항상 아침 7시에 일어나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쾅하면서 무너지는 소리 나니까 무서워서 덜덜덜 떨면서 나오지도 못하고 베란다에서 45분에 바로 전화를 했다니까. 지금 막 (아파트가) 터진 상태에서 연기 나면서 불붙었다고 신고했거든요. 그것만 생각하면 너무 막… 이게 공포가 말도 못 했어요. 진동도 너무 심했고 아파트가 그냥 막 흔들렸어요"라고 설명했다.
사고가 발생한 6층 아래 5층 복도. 사고 폭발로 인해 복도 외벽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김소영 인턴기자 sozero815@asiae.co.kr
원본보기 아이콘한편 이날 찾은 사고 현장에는 소방과 경찰, 한국전기안전공사와 도시가스 긴급 복구차량 등이 도착해 사고 수습과 조사 작업에 한창이었다. 당시 사고로 아파트 6층에서 시작된 불은 베란다를 타고 7층까지 번졌다. 주민 9명이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연기흡입과 허리통증 등을 호소했다.
불이 난 아파트의 해당 층과 위층은 당시 처참했던 사고를 그대로 말해주듯 창문 없이 텅 비어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출입문과 복도가 한눈에 보이는 아파트 뒤편에서는 층마다 우왕좌왕하는 주민들이 있었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그나마 김치냉장고가 주차장으로 날아가 살았다", "6층에서 현관문이 떨어지기도 했다"면서 폭발 당시 상황을 말했다. 실제 불이 난 장소는 6층이었지만 5층, 4층 할 것 없이 심지어 2층까지도 화재 여파로 깨진 창문을 나뒹굴었다.
해당 아파트는 같은 층의 모든 세대가 하나의 복도를 이용하는 복도식 아파트로 계단이 야외와 맞닿아 있었다. 야외로 바로 연결되는 계단을 통해 해당 아파트 건물에 들어가 보니, 현장은 더욱 처참했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6층에 가까워질수록 계단까지 튄 유리조각과 파편들이 난무했다.
복도 진입이 가능했던 8층 현장을 둘러보던 중 만난 주민 B(42·여)씨는 8층 거주자로 비교적 피해가 덜해 임시 거처가 아닌 집에 머무르는 상태였다. 그는 "소리가 엄청나게 컸고 베란다 물건이 다 쏟아졌다"면서도 "(관계 기관에서) 대응이 빨랐다. 밤늦게 연락해도 현관은 당일에 고쳐줬다"고 덧붙였다.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에서 한 손에는 수많은 달걀을 담은 바구니를, 한 손에는 일부 세간살이를 들고 가는 주민도 볼 수 있었다. 임시 거처로 이동하던 주민 C(53·여)씨는 "지금 이런 상황이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장기전으로 갈 것 같은데 일단 멀쩡한 것들은 가지고 나와야 하니까. 계속 이렇게(달걀 이랑 베개 등) 옮기느라 3일째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서워서 집 안에 들어가기 힘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베란다 쪽이 제 방인데 창문이 다 산산조각이 나서 파편이 제방 쪽으로 다 쏟아졌는데 제 방에 책이 많아서 다 우스스 쏟아졌거든요. 유리 파편이랑 책더미 때문에… 만약에 제 방에 있었으면 (구조가 어려워져) 저 죽었을 것 같아요"라며 몸서리를 쳤다.
C 씨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 구성원 2명은 모두 장애인으로 사고 당시 대피도 어려워 자칫 큰 화를 입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무슨 정신으로 (대피)했는지 모르겠다. (거동이 불편한) 한 명은 휠체어에 태우고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데리고…"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엘리베이터가 하나는 전기공급이 안 돼 갇혔고 하나는 운행이 되는 상황이라 사람들이 (우리) 먼저 타라고 말해줬다"라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목숨을 구한 기쁨도 잠시 C 씨 가족은 생계 위기에 몰렸다. 한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C 씨는 "학원에 연락해 원장님께 한동안 못 갈 것 같다며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면서 "학원도 제 빈자리 때문에 피해가 클 것이고. 죄송하죠"라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장애인이라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마땅한 일자리로 구하기 어려워 사실상 벼랑 끝에 몰렸다.
한편 성북구는 피해 주민에게 임시 거처 제공과 숙박비, 인명 피해 주민의 의료비 지원 등을 해주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성북구는 사고 직후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협조, 인근 임대주택을 피해 세대에게 임시 거처를 했다. 또 공가 이용이 어려운 2가구는 숙박비를 지원했다. 적십자 재해구호물품 세트 등 응급구호 물품도 지원했다.
관계기관과 협업해 병원 치료가 필요한 피해 세대에 대한 의료비 추가지원, 불안감 극복을 위한 심리회복지원 연계 등도 진행하고 있다.
이웃 주민들의 따뜻한 온정도 이어지고 있다. 정릉4동 주민센터가 컵라면 100박스를 지원한 데 이어 이재민의 임시거처가 밀집된 공동주택에 세탁기와 건조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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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릉4동 주민자치회는 반찬 등 음식 지원에 나섰다. 또 통장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적십자봉사단, 복지협의체, 방위협의회 등이 구성한 연합회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재민을 위한 각종 음식을 지원하고 있다.
김소영 인턴기자 sozero8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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