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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쿠팡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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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활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성희활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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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이라는 중국 선불교 화두를 배용균 감독은 제3자적 시각의 물음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영화 중 최초의 국제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이 영화가 디지털 복원 중이라고 하는데 만약 다시 개봉한다면 꼭 보고 싶다.


쿠팡이 뉴욕거래소에 상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쿠팡이 동쪽으로 간 까닭에 대해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상장 주체인 쿠팡 지주회사는 원래 미국 기업이니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온 까닭이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쿠팡이 한국 기업이라고 생각하니 미국으로 간 까닭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사업기반으로나 국민 인식으로나 한국에 상장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고 또 그럴 수 있는데도 쿠팡은 왜 굳이 동쪽으로 갔을까? 언론의 분석 중 많이 거론되는 세 가지 요소를 검토하여 그 까닭을 짐작해 본다.

첫째, 한국은 기업 활동에 위험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주장은 쿠팡의 증권신고서(Form S-1)가 ‘투자위험요소’(risk factors)로서 한국의 영업 환경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쿠팡은 투자위험요소로서 총 16개의 항목을 나열하고 있는데 여덟째인 한국 고유의 위험에서는 비상시 증권거래나 배당금 송금을 할 때 외국환거래법상 정부의 사전 승인 등의 규제 위험이 있다는 점, 한국 계열사 임직원들의 행위로 경영진이 형사처벌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 계열사와의 거래가 공정거래법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기타 세법과 노동법 등 관련 위험을 적시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신고서 상의 이 위험들은 기업을 둘러싼 보편적 위험에 가깝고 현재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위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소송제도와 같이 한국보다 큰 위험이 미국에 있는 경우도 있고, 쿠팡 지주회사가 미국 상장법인이라 해도 국제사법이나 역외적용을 통해 한국의 관련 법률이 적용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원래 증권신고서는 허위나 오해를 유발하는 서술이 있을 경우 법적 제재가 가혹하여 긍정적·낙관적 전망은 일체 없이 부정적·비관적 전망으로만 가득 채워지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증권신고서의 기술만을 토대로 한국의 기업 환경이 특별히 더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둘째, 적자기업으로서 한국거래소 상장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쿠팡은 설립 이후 계속 적자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3년간 누적 적자가 5조원대고 미래도 낙관적이지 않다고 증권신고서에 기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치평가와 함께 상장이 쉽게 되기 때문에 미국으로 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그러나 한국거래소도 미국의 유연한 상장 기준을 본떠 2017년부터 소위 ‘테슬라 요건’이라고 하여 적자기업이라도 시가총액이 크면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서 쿠팡 정도의 회사라면 거대한 적자규모로 인해 논란은 있어도 한국거래소 상장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물론 미국만큼의 가치 평가를 받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이 지적도 쉽게 수긍이 가는 건 아니다.

셋째, 복수의결권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상장 후 창업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 겸 CEO의 지분은 10.2%에 불과하지만 의결권은 76.7%를 가지게 되는데, 이는 김 의장만 보유하게 될 클래스B 주식이 일반 주식의 29배에 달하는 복수의결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의결권은 주식회사 지배권의 핵심이기 때문에 복수의결권은 주주나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투자판단 요소 중 하나로서 미국 증권신고서에도 맨 앞에 기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수의결권이 인정되지 않는데 최근에야 정부는 벤처기업에 한해 창업주에게만 복수의결권을 허용하자는 방안을 담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복수의결권은 보통주의 최대 10배 한도, 10년의 일몰 기한, 상장 후 3년의 존속 시한, 상속 및 양도 불가 등의 제한을 담고 있다. 쿠팡 김범석 의장의 복수의결권에는 이러한 제한이 전혀 없다. 일몰 기한이나 상장 후 존속 시한도 없고 심지어 제한적 범위 내에서 상속과 양도마저 가능하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쿠팡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여럿 있겠지만 복수의결권이 핵심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 본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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