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구두보고도 기록남기겠다는 산업부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열심히 일한 사람만 탈이 난다면 과연 누가 일할까요. 관료사회 내 복지부동만 확산될 겁니다."
최근 만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털어놓은 속내는 적극행정을 추진하기 어려운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탈원전 추진으로 일선 공무원이 구속되고 원전 문건 삭제과정이 대북 관련 이슈로 옮겨붙으면서 어느 누가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산업부 내부가 뒤숭숭해지자 성윤모 장관은 최근 업무문화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TF에선 불만이 쏟아졌고, 부처에서는 개선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하지만 개선책 역시 씁쓸한 건 마찬가지다. 구두보고의 기록 전산화 추진은 단적인 예다. 서류가 남는 문서보고 뿐 아니라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 구두보고까지 샅샅이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원전 문건 삭제로 국장, 서기관이 구속되자 '꼬리'만 남고 '몸통'은 빠져나간다는 직원들의 불만과 박탈감이 커지가 급기야 구두보고 전산화까지 생각이 닿은 것이다.
분쟁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산업부 내 고문 변호사 수도 대폭 늘리고 기피부서가 된 에너지 조직 직원의 승진 우대 등 사기 진작 방안도 검토중이다. 이 밖에 장차관 구두보고 대신 화상보고를 늘리고, 회의 횟수 및 시간을 최소화하는 등 종합적인 업무문화 개선방안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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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탈원전 같은 정권 차원의 무리한 정책 추진이 공무원들의 무리한 행정을 낳은 원인이지만 현 상황에서 바뀐 것은 없다. 오히려 상처로 얼룩진 관료사회는 열심히 일하면 탈난다며 적극행정을 꺼리는 경직된 분위기만 남았다. 관료들이 적극행정을 기피할 때 그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된다. 구두보고까지 전산화하겠다는 산업부를 보며 정책 결정을 법원의 판단 대상으로 만든 책임을 과연 관료사회에만 물을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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