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 낮춰라"…배터리 공급망 안보 경쟁
배터리 3사 북미 ESS 시장 공략 속도
EV→ESS 확대…SK온, 생산전략 변화

배터리가 친환경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탈중국 공급망 재편이 맞물리며 미국과 유럽이 자국 중심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다. 최근 국내 배터리업계가 전기차(EV) 중심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으로 전략 수정에 나서는 흐름도 이런 시장 변화와 맞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SK온 조지아 공장 전경. SK온

SK온 조지아 공장 전경. SK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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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국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국면(A New Phase for the U.S. Battery Industry)' 보고서를 통해 배터리 산업을 경제·국가안보 핵심 산업으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와 전력망 전기화, 방산 체계 변화가 맞물리며 배터리 공급망이 전략 인프라 성격을 갖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보고서는 중국 중심 배터리 공급망 의존도를 미국의 핵심 안보 리스크 중 하나로 지목했다. 드론과 전기 전투차량, 에너지 무기 등 미래 무기 체계가 빠르게 전기화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 확보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생산거점을 확보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전략적 가치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사실상 대안 공급망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통해 자국 내 생산 배터리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국우려기업(FEOC)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주목도가 높아지는 배경에는 ESS가 대규모 발전·송배전 인프라 대비 짧은 구축 기간으로 전력 수요 증가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2~3년이면 구축할 수 있지만 송배전망과 발전 인프라 확충에는 최대 7~10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설치 속도가 빠른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한데, 출력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특성상 ESS 구축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SDI가 배터리를 공급한 미국 캘리포니아 ESS(에너지 저장 장치) 시설 전경. 삼성SDI

삼성SDI가 배터리를 공급한 미국 캘리포니아 ESS(에너지 저장 장치) 시설 전경. 삼성S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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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해 신규 태양광 설비의 87%가 ESS를 함께 구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주거용 태양광 기업 선런(Sunrun)의 배터리 결합 비율도 2023년 1분기 15%에서 올해 1분기 69%까지 상승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올해 1~3월 글로벌 ESS 신규 설치량은 68.5GWh로 전년 동기 대비 28.8%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전력망용 ESS는 51.3GWh로 36.9% 늘며 시장 성장을 주도했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발빠르게 북미 ESS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공장 등을 기반으로 북미 ESS 공급 확대에 나서고 있으며, 한화큐셀 등과 ESS 배터리 공급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SDI 역시 미국 시장 중심으로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사업을 강화하며 북미 ESS 수주 확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EV 중심 생산 비중이 높았던 SK온의 전략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SK온은 최근 미국 조지아 공장 EV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충남 서산에도 최대 6GWh 규모 LFP 기반 ESS 생산라인 구축을 추진 중이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미국에서 ESS용 배터리 양산에도 나설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 생산 다변화가 아니라 'EV 중심 체제'에서 '전력 인프라 중심 체제'로의 전략 수정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국 중심 ESS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강화하면서 미국 현지 생산 역량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SK온은 ESS 수주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플랫아이언과 1GWh 규모 LFP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복수 고객사와 총 10GWh 이상 규모 추가 공급 계약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계약 규모가 약 1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 LG에너지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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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유럽 현지 생산 경쟁력 확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발표한 산업가속화법(IAA) 초안을 통해 전기차와 배터리 핵심 부품의 역내 생산 비중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배터리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SK온의 경우 헝가리 코마롬 1공장(7.5GWh), 2공장(10GWh), 이반차 공장(30GWh) 등 유럽에서만 총 47.5GWh 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코마롬 2공장은 현재 80%대 중반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이 지난해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고, 대표 모델인 ID.4와 ID.7 등에 SK온 배터리가 탑재되면서 공장 가동률 상승에도 힘이 실린 것으로 분석된다.


LG에너지솔루션도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을 중심으로 유럽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 공장을 통해 BMW 등 유럽 완성차 업체 대상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유럽 현지 생산거점을 기반으로 공급망 대응력과 고객사 밀착 생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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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배터리를 친환경 산업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이제는 전력망과 공급망, 방산 경쟁력까지 연결되는 전략 산업으로 보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한 기업들의 가치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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