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연출, 김종관 감독 "원작과 차이 만들려 노력"
다른 해석, 감각적인 영상미로 채워

김종관 감독./사진=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김종관 감독./사진=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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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어느 겨울밤, 조제는 영석과 유원지의 관람차를 타게 된다. 높은 곳까지 올랐다가 한 바퀴를 돌아 지상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는 이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다. 관람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조제는 영석이 문을 열지 못하게 막는다. 다시 서서히 관람차는 지상에서 멀어지고, 조제는 그렇게 영석과 같이 있을 수 있는 한 바퀴의 시간을 더 번다. 영화 '조제'가 이별을 보여주는 방식은 이랬다.


지난해 12월 '조제'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은 우려 또는 기대, 혹은 이 감정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현실을 느꼈을 것이다. '조제'의 원작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소설과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원작 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와 함께 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영화로 손꼽히는 멜로 장르의 고전이다.

원작과의 비교가 숙명적인, 어쩌면 어떤 영화감독도 꺼릴 법한 리메이크. 김종관 감독은 '조제'를 찍기로 했을 때 원작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면들을 덜어내야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조제와 츠네오가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노니는 장면, 개조한 유모차 스케이트를 타고 한낮 외출을 하는 장면, 이별 후 오열하는 츠네오를 비춘 마지막 엔딩 등 원작의 명장면은 리메이크 '조제'에서 재연되지 않는다.


김종관 감독은 대신 감각적인 영상과 이별에 대한 담담한 묘사로 영화의 빈 곳을 채웠다. 다수의 단편과 장편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등을 선보이며 섬세한 연출가라는 평가를 받은 김 감독은 '조제'에서도 관객의 감정을 동요하게 만드는 감각적인 이미지로 자신의 인장을 새겨넣었다. 기대와 우려 속에 꼭 '조제'를 택해야만 했던 이유를 김종관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영화 '조제' 한 장면. 극 중 영석(남주혁)이 조제(한지민)와 시선을 맞추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 컷(이하 동일)

영화 '조제' 한 장면. 극 중 영석(남주혁)이 조제(한지민)와 시선을 맞추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 컷(이하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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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이 부분이 궁금할 것이고, 질문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기대치와의 싸움이 되겠다. 좋은 평가를 받는 데 불리한 게 점이 많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제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사람을 보는 관점이나 인간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 같은 것들이다. 또 원작 영화가 만들어진 2000년대 초반의 일본과 2020년의 한국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런 변화와 저라는 창작자의 개성, 또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의 개성이 모여 원작과는 다른 의미의 장점을 가진 영화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보다는 창작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여러 경험을 밟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작은 소품들까지 원작과 차별을 만들어 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전동차로 바뀐 휠체어, 바퀴달린 상, 원작의 정갈한 음식과는 다른 한국의 느낌을 살린 음식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좋은 원작이지만, 그 길을 똑같이 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원작에 애착이 많은 분들에게는 장면들이 그대로 재연되지 않거나 변형된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저 역시 원작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많다. 가령, 조제가 의자 위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그런 장면을 그대로 복사하듯 가져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각색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제가 좋아했던 장면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작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한국이라는 공간과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나름의 해석으로 인물들이 생명력을 갖고 할 수 있는 디테일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조제는 위스키병을 모으는 게 취미인데, 이는 원작에선 전혀 없었던 설정이다. 어쩌면 바깥세상과 그렇게밖에 소통할 수 없는 조제의 수집가 같은 모습이 강조된 느낌도 들었다.


▲조제의 집에는 할머니가 가져온 온갖 버려진 물건들이 흘러오게 된다. 조제라는 사람도 버려졌다는, 트라우마와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버려진 물건들에 대한 어떤 애착 심리가 있다고 느꼈고, 그런 것들이 드러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버려진 물건들이지만 그 안에서도 조제라는 사람의 취향이 드러나길 바랐다. 쓸쓸하고 폐쇄적인 삶이라도 취향이 없는 사람보다 취향이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제' 한 번 더 만들어야 했던 이유 - 김종관 감독 인터뷰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원본보기 아이콘


-조제와 영석의 이별을 그린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관람차 장면이나 상상으로 묘사된 스코틀랜드 장면 등 이별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기보단 특정 이미지를 통해 유추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원작보다 많이 생략되어 있어 갑작스러운 느낌도 든다.


▲사랑에 빠지는 어떤 순간을 묘사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서사적으로 잘 쌓아서 사랑을 보여주는 방법도 있지만, 부지불식간에 벌어지는 잠깐의 순간을 통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경험한 사랑과 이별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보편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유적인 묘사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작에선 이별의 과정이 굉장히 상세하게 다뤄져 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조제와 영석의 관계에 어떤 보편적인 기억을 대입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그런 여지를 만들고 싶었다.


-주연으로 한지민, 남주혁 배우를 캐스팅했다. 아무래도 원작 영화가 있고 두 배우의 감정 연기가 중요한 멜로 장르인 만큼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연기에 있어서 두 배우에게 어떤 주문을 했나.


▲남주혁 배우를 먼저 캐스팅했다. 배우의 필모그래피 보다는 배우가 가진 인상이나 얼굴의 느낌, 발성에서 선하고 따뜻한 기운이 있다고 느꼈다. '조제'는 원작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쓸쓸한 톤을 보이는데, 결말이나 던지는 메시지는 원작이 더 냉정한 편이다. '조제'는 원작보다 멜로 장르로서 조금 더 따뜻한 힘이 있기를 원했다. 그런 부분에서 남주혁 배우가 가진 선하고, 긍정적인 느낌이영화에 어울린다고 느꼈다. 배우의 원래 움직임이 영화에도 그대로 녹아들길 원했다. 실제 촬영장에서도 힘쓰는 일이나 움직이는 일을 배우에게 많이 하도록 하면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했다.


조제 같은 경우 원작에선 20대로 설정되어 있지만, 리메이크에선 30대로 설정하는 것이 한국적 리얼리티와 더 맞다고 느꼈다. 한지민 배우가 영화에 함께하게 되면서 조제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원작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스산한 느낌이 들기를 바랐다. 지민 배우가 여태까지 소화한 연기와는 다른 톤의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조제라는 캐릭터를 알기 위해 계속 대화했다. 영화의 후반 작업을 할 때까지 그 과정이 반복됐다. 결과적으로 조제의 나이가 올라간 것이 영화의 장점이 된 것 같다.


'조제' 한 번 더 만들어야 했던 이유 - 김종관 감독 인터뷰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원본보기 아이콘


-영화가 원작에 비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영화의 분위기는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간인 조제의 집 분위기,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씨 등 전체적으로 어둡다.


▲영화에서 공간이나 풍경, 계절 등 아름답게 찍힌 장면이 많다. 그렇지만 통상적인 한국 영화에 비해 어두운 겨울 느낌이 강하다. 빛과 그림자가 있다면, 밝은 부분보단 그림자 안에서 디테일을 만들어 그걸 아름답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미장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밝은 것만 보려는 것도 매력이 없지 않을까. 어떤 영화들은 조금 어둡게 해석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안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움이 만들어질 수 있다.


-원작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조제가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는 장면이 있다. 한국판 '조제'에서는 조제가 자신의 집 깨진 창문 구멍을 통해 호랑이를 보게 된다. 아주 희미하고도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두 원작에서 호랑이와 물고기는 중요한 상징으로 쓰인다. 호랑이는 조제가 두려워하는 존재이고, 물고기는 자신과 연인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이것에 대해 저는 원작과 달리 해석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제목에서도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버렸다. 그대로 가져오면 원작자에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했다. 조제에게 영석은 담에 있는 구멍을 메워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제는 폐쇄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고 바깥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영석은 조제에게 그런 두려움을 막아주기도 하고, 바깥과 연결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조제는 종종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영석은 조제의 그런 허언을 의심하지 않고, 그걸 믿는다기보단 받아들여 준다. 조제가 생각하는 세계를 지켜주는, 담을 메워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사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영화를 봐도 감각적인 영상들이 눈길을 끈다. 사진 작업이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칠 것 같다. 두 표현 양식에 대한 생각은?


▲저 역시 영화를 만들 때 영상미를 추구하는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제가 추구하는 영상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무작정 예쁘게 찍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싶다. 사진을 찍는 것은 이런 부분들에 대한 훈련이 된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본 것들에 대한 인상, 느낀 것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작업들이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이 영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서로 도움을 준다.


'조제' 한 번 더 만들어야 했던 이유 - 김종관 감독 인터뷰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원본보기 아이콘


-장편 영화로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를 선보였다. 두 작품 모두 사랑과 이별, 재회 등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번에 연출한 '조제' 역시 그렇다. 멜로 드라마에 끌리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사실은 이전에 찍은 작품들이 다양하다. 단편 작업도 많이 했는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 중에선 멜로적인 특징을 가진 작품이 많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는 다른 여러 장르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멜로 영화가 가진 몇 가지 장점들을 많이 봐왔다. 멜로 영화는 굉장히 사적인 것들에 집중하는데, 그러면서 결국에는 더 큰 이야기를 한다. 다른 장르에 비해 스스로에 대해 가장 많이 돌아보게 하는 장르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야기를 만들 때 모순된 세상에 관해 얘기한다면, 그 세상 안에 자기는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좋은 쪽에 있고, 나와 대척하는 나쁜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는다. 반면, 멜로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 이상하고 모순된 점을 볼 수 있게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아주 깊은 곳까지 가볼 수 있는 이야기, 이게 멜로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조제' 개봉 후 다양한 반응을 접했을 것 같다. 어떤 평가를 받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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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으로서 긴 과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영화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 개봉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통의 영화에 비해 느끼기 어렵기도 한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대한 완연한 평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 또한 그런 각오로 임했다. 당장은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긴 과정으로 지켜보고 싶다. 창작자들은 어떤 궤적 안에서 평가를 받게 된다.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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