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치킨 주문이요" '한파·폭설' 배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이더 노조 "폭설에 배달은 살인"
배달원 10명 중 3명 "폭우나 폭설 시에도 배달했다"
"주문 자제하자" 배달원 안전 위해 배송 취소하는 경우도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전국 곳곳에 몰아친 폭설과 한파로 도로가 얼어붙으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택배·배달업 종사자의 안전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배달원들이 폭설 등과 같은 악천후 속에서도 업무를 지속해 인명피해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폭설·강풍·한파 등 자연재난에 가까운 상황에서는 배달을 자제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배달기사 노동조합은 배달원의 안전 보장을 위해 악천후 시 운행을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갑작스런 폭설 등 한파 영향으로 강추위가 이어지면서 지난 6일 밤 내린 눈이 도로 곳곳에 얼어붙었다. 이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특히 경기 지역의 경우, 눈길 교통사고와 보행자 미끄러짐 사고로 인해 총 10명이 경상을 입었고 인천에서는 빙판길에 행인이 미끄러지거나 차량끼리 추돌하는 사고가 10건 발생했다.
음식·택배 배달원들 또한 빙판길로 인해 사고 위험을 겪는 등 업무에 큰 지장을 겪고 있다. 자신을 배달원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길이 미끄러워서 배달하는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 평소 3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길이 하도 미끄러워 조심하다 보니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며 "천천히 오토바이를 운행해도 언제 미끄러질지 몰라 운행하면서도 조마조마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폭설이 내린 지난 6일 저녁 배달기사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현재 곳곳에서 배달원들이 넘어지고 있다"면서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오른 라이더들은 고립됐다. 지금 배달 일을 시키는 것은 살인과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악천후임에도 불구하고 배달을 택하는 배달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라이더유니온'이 라이더 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폭우나 폭설 시에도 배달했다'고 답한 라이더들은 30.9%(17명)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자 시민들도 배달원들의 안전을 위해 주문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배송을 취소했다'는 내용의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전날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새벽 배송 취소나 배송일 변경 아시는 분 있냐"면서 "눈이 많이 와서 배송 기사님들이 걱정된다. 마음이 조급하고 편치않다. 배송을 취소하거나 변경하고 싶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음식을 주문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커뮤니티를 통해 "주말까지는 배달음식을 자제해야겠다. 음식점에 타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빙판길이라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해당 게시물에 누리꾼들은 "눈이 많이 오는데도 오토바이 타고 천천히 배달 다니시는 기사님들 보고 짠했다. 이번 주는 배달보다 직접 포장하러 가는 쪽으로 생각해봐야겠다", "저도 새벽 배송 시키려다 취소했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반면 배달을 하는 것은 배달원의 자유라며 음식이나 물품 등을 주문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기사가 주문을 안 받으면 되는 건데 배달원의 안전을 소비자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폭설 속 주문하는 고객을 나쁜 사람으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발했다.
폭설 직후 배달 플랫폼들은 대부분 배달비를 올리며 기사 개인의 선택에 맡겼다. 쿠팡이츠의 경우 지난 6일 폭설이 내리자 서울 강남구와 용산구,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등 일부 지역에서 배달원들에게 주는 건당 배달 수수료로 1만5000원을 내걸었다. 평소 해당 지역의 배달 건당 수수료가 3100~42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대 5배가량 오른 것이다.
또 배달을 거부하면 받는 불이익도 있어 배달원들은 쉽사리 업무를 거부할 수 없다. 배달 거부 땐 평점이 낮아져 배정 대기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평점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배달원에게는 배달 요청 메시지가 아예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결국 배달원들은 당장의 생계유지를 위해 위험한 도로 상황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배달 업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배달기사 노동조합은 정부가 폭설 등 겨울철 기상문제에 대응해 배달원 안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7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주문 자체를 막지 않으면, 누군가는 위험한 배달업무를 계속 수행할 수밖에 없는 만큼 주문중개 업체가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는 기준 등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 위원장은 "많은 이들이 '프리랜서 신분인 배달기사가 돈을 많이 벌려고 폭설 때 일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수수료가 올라도 사고가 나면 더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아는 베테랑 기사들은 폭설이 오면 (일하는 대신) 그냥 집에 간다"며 "오히려 초보자들이 프로모션이 높게 오른 것을 보고 끝까지 배달하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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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은 그날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위험을 알면서 일할 수밖에 없고, 사고가 났을 땐 병원비가 더 나와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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