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에 예술혼 담은 김창열 화백 별세
빛 머금은 물방울, 단색 바탕 화폭 등에 그려 넣어 세계적 명성
'물방울 회화'에 50여 년 전념…동양의 철학·정신 함축
한국·프랑스 오가며 문화교류 저변 확대해 슈발리에 받아
'물방울 회화'로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알린 김창열 화백이 5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빛을 머금은 물방울을 단색 바탕이나 문자가 그려진 화폭에 그려 넣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이다. 열여섯 살에 월남해 사실주의 거장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수학했다.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57년 박서보, 하인두, 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당대 사조였던 앵포르멜(형식적인 구조를 거부하고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을 이끌었다.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은 건 1960년대부터다. 파리 비엔날레(1961년)·상파울루 비엔날레(1965년) 등에 작품을 출품했고, 1965년부터 4년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비디오 거장'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마구간을 작업실 겸 숙소로 쓰며 작품 활동에 매진해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서 처음으로 '물방울 회화'를 선보였다. 검푸른 단색 바탕 위에 영롱한 물방울이 떠 있는 '밤의 행사(Event of Night)'였다.
'물방울 회화'를 그린 건 운명과 같았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아침에 세수하려고 대야에 물을 담다가 캔버스 뒷면에 물이 튀었는데, 크고 작은 물방울이 햇빛에 비쳐 찬란하게 빛났다"고 말했다. 이 작업은 50년 가까이 이어졌다. 1980년대부터는 캔버스가 아닌 마대의 거친 표면에 물방울을 표현했다. 마대에 한자체나 색점 등을 채워 넣어 동양적 정신을 부각했다. 인쇄체로 쓴 천자문 일부가 투명한 물방울과 화면에 공존하는 '회귀' 연작도 발표했다. 동양의 철학과 정신이 함축됐다고 평가돼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랐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사마모토젠조미술관, 프랑스 쥬드폼므미술관, 중국국가박물관, 국립대만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들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전시돼 있다. 고인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도 받았다. 2016년에는 한국전쟁을 피해 머물던 제주도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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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과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안암병원, 발인은 7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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