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소비자편의 내팽개친 의료계 몽니…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또 무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의료계 반발로 10년째 표류
여야, 금융당국, 소비자, 보험사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 찬성에도 의료계 벽 못넘어
언택트 시대 맞지 않는 구시대적 방법에 소비자만 피해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의료계 벽은 높았다."
21대 국회 여야 모두 이견이 없어 보였던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가 또 다시 물건너갔다. 보험사들은 병원에서 청구서류를 전송하는 전산망 구축비용까지 부담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결국 좌절됐다. 언택트 시대에 뒤떨어지는 '구시대적인 청구방식'을 고치지 못한 것이다.
이달 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논의했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실손보험은 3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린다. 하지만 청구절차가 번거롭고 보험가입자들의 불만이 컸다. 복잡한 과정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2018년 기준 연간 9000만건에 이르는 실손보험 청구의 76%가 팩스나 보험설계사에게 전달, 대리점 방문 등을 통해 이뤄졌다. 24%는 종이서류 발급 후 이메일이나 보험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제출했다. 이 경우에도 보험사 직원이 서류를 보고 일일이 전산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 절차를 거친다.
전산으로 청구를 간소화하자는 논의는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에서 시작됐다. 소비자는 물론 보험업계나 금융당국도 소비자 편익 증진이나 비용절감에 기여할 것이라며 두 손을 들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방치됐다.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여야 모두 청구 전산화를 의무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다. 고 의원은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심평원이 서류전송 업무 외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하거나 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전송 업무와 관련해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해 발의했다.
윤 의원도 전산체계 구축이나 운영과 관련한 사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해 여야 합의 처리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의료계의 문턱을 결국 이번에도 넘지 못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직접 의원들을 찾아가 법안의 부당성과 의료계 우려를 전달했다. 이 날 면담은 1시간이 넘게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소비자편의를 저버리고 의료계의 설득에 넘어갔다. 소비자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계를 제외한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찬성한 이 법안은 10년째 표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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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기대가 담긴 청구 간소화가 무산됐던 시각, 여야는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에 이르면 비대면으로 진료를 허용키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대면으로 진료를 받아도, 보험금 청구를 하려면 병원에 꼭 가야하는 '모순'을 소비자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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