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의 도토리에서 자라난 사법의 상수리나무”는 윌리엄 렌퀴스트 전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칙 Rule 10b-5를 두고 한 말이다. 증권거래소법 제10조(b)항의 백지 위임에 따라 위원회가 제정한 이 규칙은 미국에서 민·형사 공히 거의 모든 증권사기 사건에 적용되는 ‘포괄적 반사기 조항(catch-all anti-fraud provision)’이다. 처음 제정될 때는 거창한 의도없이 무심히 만들어졌지만 이후 법원의 정교한 해석 및 유연한 적용에 의해 모든 것을 규제할 수 있는 만능의 법리 체계가 구축돼왔는데 그 과정을 한 문구로 요약한 것이 “입법의 도토리에서 자라난 사법의 상수리나무”라는 이 표현이다.
자본시장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거래되는 상품도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어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전문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불공정거래도 더욱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도고일척 마고일장(道高一尺 魔高一丈)’이라는 말처럼 신속하고 효과적인 규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같은 포괄적 반사기 조항에 대한 요청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끝에 우리나라도 2007년 자본시장법 제정 시 Rule 10b-5와 거의 동일한 포괄적 규제 조항을 제178조에 ‘부정거래’라는 이름으로 도입했다.
‘부정거래’ 조항은 왜 포괄적 반사기 조항으로 불릴까? 이 조항의 핵심은 제178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되어 있는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다. 즉 누구든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기타 거래와 관련해 부정한 수단 등을 사용하면 최고 무기징역에 처해지고 부당이득의 5배에 달하는 벌금도 병과되는 무서운 조항이다. 이 부정거래에서 비난가능성의 지표는 ‘부정’이라는 단어뿐이다. 다른 모든 구성요건들, 즉 금융투자상품, 매매 기타 거래, 수단·계획·기교, 사용 등은 가치중립적이어서 ‘부정’이라는 요건이 유일무이한 위법성의 지표가 된다. 그러면 이 ‘부정’의 판단기준은 무엇일까? 우리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부정하다고 인정되는 일체의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부정거래로 정의하고 있다.
전통적인 죄형법정주의 원칙에서 보면 이례적으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이 부정거래 조항은 최근 활용도가 급증하고 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올 한 해 언론에 보도된 검찰 기소사건들만 보더라도 삼성물산 합병, 코오롱의 인보사케이주, 신라젠의 무자본 인수·합병(M&A), 라임·옵티머스펀드 사기적 판매, 상상인 저축은행의 불법대출, 애널리스트 선행매매 등 굵직한 사건들에 모두 부정거래 조항이 적용되었다. 검찰의 적극적 활용과 법원의 유연한 적용으로 미국과 같은 상황이 되어 가는 듯한데 과연 이렇게 진행되어 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우리와 미국의 법리는 동일할까?
사실 부정거래의 원조인 미국에서는 우리 검찰이 적극 활용하는 ‘부정한 수단’은 인정되지 않는다. 즉 10b-5에서 (a)와 (c)항에 있는 사기적인 수단·계획·기교·관행·업무방법 등에 의한 처벌은 인정되지 않고 (b)항의 부실표시(허위표시와 사실 은폐)에 의해서만 규제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부정’이라는 모호한 말 대신 ‘사기적(to defraud)’이라는 보다 명확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작지 않은 차이점이다.
최근 우리 부정거래 조항은 또 한번 진화하고 있는데 바로 정보이용행위에 부정거래 조항을 적용한 점이다. 금융감독원 특사경 제1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선행매매 사건에서 애널리스트는 자신이 작성한 조사분석보고서의 공표 전에 차명거래를 하거나 친구에게 정보를 제공해 거래하게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논란은 좀 있지만 일반적으로 예상되었던 제54조나 제71조가 아니라 처음으로 제178조 제1항 제1호의 ‘부정한 수단’ 조항 위반으로 기소했고 올해 7월 서울남부지법은 이를 인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부정거래 조항은 시세조종 조항의 보완적·예비적 조항이라는 법조계의 일반적 인식을 깨고 일종의 내부자거래인 정보이용행위를 부정거래로 선언한 획기적 사건이다. 만약 이 판결이 확정된다면 이제 부정거래 조항은 내부자거래를 포함한 모든 불공정거래에 적용될 수 있는 진정한 ‘절대반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한편으로는 막연하기 때문에 무효라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날로 고도화·지능화되어 가는 자본시장 범죄와 오랜 기간 숙성된 규제 요구를 고려하여 도입된 부정거래 조항을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해 위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연한 적용은 자의적 법적용과 권한남용으로 흘러 법적 안정성을 해칠 위험도 작지 않다. Rule 10b-5를 동일하게 도입한 일본에서도 부정거래 조항은 1965년 단 한번만 적용되었을 뿐 현재는 사문화돼 있는 상태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자면 법원이 부정거래에 대한 구체적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미국에서 어떤 자금조달 수단이 증권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판단 기준인 ‘하위 기준’은 1946년 연방대법원이 증권법상 ‘투자계약’이라고만 되어 있는 증권의 속성을 4가지로 제시한 것인데, 최근 비트코인에 이르기까지 75년간 숱한 사례에서 그대로 적용돼 법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 대법원도 포기할 수는 없고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예리한 칼인 부정거래 조항에 대해 현명한 판단기준을 수립할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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