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누구? 최연소 정계 입문…최고령 대통령 눈앞
6선 상원의원…유색인종 지지에 비주류의 삶
중도 실용주의 표방
[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30세의 나이로 상원에 입성해 반세기동안 이 자리를 위해 기도해 온 조 바이든. 환영합니다. 당신의 꿈이 이뤄지길. " - 뉴욕타임스(NYT)
NYT는 이번 대통령선거 직후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일대기를 소개하며 이 같은 문구를 달았다. 바이든 후보의 대권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최연소로 정계 입문해 최고령 대통령 당선을 눈앞에 둔 바이든 후보는 6선 상원의원을 거치는 등 워싱턴 주류로 활동해왔지만, 서민 등 비주류의 삶을 대변해온 정치인으로 꼽힌다. 아픈 가족사로 대중들의 공감을 샀고, 유색인종의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아버지 조지프 바이든 시니어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가 펜실베니아주 상원의원까지 지냈고, 이후에도 유복한 집안이었으나 바이든이 태어날 무렵에는 가세가 기울었다. 그의 아버지는 화로 청소와 중고차 중개업을 했다. 1950년대 불황이 닥치자 델라웨어로 이사했다. 그가 펜실베이니아주와 델라웨어주를 정치적 고향으로,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델라웨어대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시라큐스 법학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이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법학대학원 재학 중 첫 사랑인 네일리어 헌터와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1972년 30세에는 델라웨어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공화당 현역 거물을 꺾고 당선됐다. 최연소 상원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전국에 조 바이든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선거를 치른 뒤 6주 후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장남 보와 차남 헌터가 입원한 병실에서 울면서 상원의원 선서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바이든은 사고로 사별한 첫 아내와 딸의 죽음을 기리며 매년 12월 18일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의 아픈 가족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을 쏙 빼닮은 장남 보 바이든이 2015년 45세에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델라웨어주 법무장관까지 지낸 보 바이든은 조 바이든이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여겼을 만큼 더욱 애틋했던 자식이다. 바이든은 오히려 장남 보의 죽음으로 다시 대선에 도전할 힘을 얻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첫 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헌터 바이든만 남아있다.
비극적 가족사는 그에겐 아픔이었지만,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는 도움이 됐다. 장남 보가 뇌종양으로 투병당시 바이든은 부통령으로 재직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엉망인 탓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경험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비탄에 빠져있는 미국민들에게 바이든은 "코로나로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의료비 폭탄을 맞게 된 이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하며 정책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바이든은 '공감할 수 있는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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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델라웨어 연방 상원의원으로 지낸 그의 정치경력에 대해서는 중도 실용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파를 초월해 의견이 같은 공화당 의원과 손을 맞잡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또한 이념이 아닌 실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1990년대 걸프전에는 반대했지만 2003년 조지W.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에는 찬성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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