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탄생 : 식민지 공론장의 구조 변동

[김희윤의 책섶] 3·1 독립운동이 탄생시킨 한반도의 국민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10년 전 조선이 이미 사라졌지만 옛 군주의 죽음은 백성이자 인민을 시민으로 각성시켰다. 1910년 8월 29일 대한 제국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은 무단통치로 조선 전역을 억압했다. 현실의 국가는 무너졌으나 시민들 가슴 속에 정신의 국가는 건재했다. 군주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 고아 의식’은 이내 주체 의식으로 전환돼 폭발한다.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인 3·1운동은 군주와 국가의 분리, 시민이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호명된 대사건이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국민은 탄생했지만 국가가 없었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잔혹하고 집요하게 한반도에 뿌리내리며 민중의 사고를 짓눌렀다. 총독부는 1 911년 조선교육령에 의거해 조선어가 아닌 다른 모든 과목의 교과서를 일본어로 발행했다. 행정· 법률 문서도 일본어 작성을 의무화해 한글로부터 국어의 지위를 빼앗았다. 우리의 말과 글을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욕이었다. 이에 나라 잃은 국민은 문예· 종교· 사회운동의장으로 피신해 정신의 식민지화를 어렵사리 방비했다. 해외로 피신한 독립 인사들은 빼앗긴 영토 바깥인 중국 상하이에 정신의 국가인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무형의 국가를 품은 국민은 언론과 종교로 정체성 확립에 나섰다. 시민의 경험과 열망은 3·1운동이후 국민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일본 메이지 유신기의 정치인 이노우에 가쿠고로는 저서 ‘ 서울에 남은 꿈(漢城之殘夢)’에서 일본의 조선 침탈 배경에 국권 확장론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최근 중국이 서양 열강에 의해 분열될 것이라는 논의를 듣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은 섬나라인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대륙에 발판을 구축하고 서양세력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의 독립은 위태로울지 모른다. 그 발판 구축의 첫걸음이 조선을 우리 세력 범위 안에 놓는 일이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열강의 침입에 맞설 유일한 대안이 조선 침탈을 통한 국권 확장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혁명 아닌 독립운동이 국민 탄생의 배경을 이룬 데 이런 제국주의가 한몫했던 것이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 교수는 한국의 근대 국가와 국민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탐색한 ‘ 탄생 3부작’을 시작한 바 있다. 2011년 ‘ 인민의 탄생’, 2 013년 ‘시민의 탄생’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 국민의 탄생’은 조선 인민이 근대 사회의 개인을 거쳐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변모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저자는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으로 한반도 근대사 속의 국민 태동을 분석했다. 그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해외 독립운동 조직과 당시 최대종교집단인 천도교· 기독교에 주목했다.

종교는 나라 잃은 국민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위로요, 은신처였다. 단단한 교리와 조직이 갖춰진 종교의 힘으로 국민은 작게나마 자기 뜻을 펼쳤다. 국민은 일본의 폭압을 기도와 신앙으로 버텨냈다. 이들의 신심은 종교에 도덕과 양심전파라는 시민 종교의 역할도 부여했다.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하나된 국가를 열망하며 사회운동에 나섰다. 몸은 한반도에서 벗어나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늘 그곳에 있었다. 이들은 세계 각국에 선언서와 호소문을 보냈다. 이는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첨병이 됐다. 그리고 이들의 호소는 고국의 국민이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 자존의 자양분이었다.


양극화 현상과 무한 경쟁으로 소통이 단절된 오늘의 한반도.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공론장을 마련하고 탄생한 국민의 출현 과정은 국가와 국민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거운 메시지로 다가온다.

AD

<국민의 탄생/송호근 지음/민음사/2만80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