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택배 공화국'의 어떤 죽음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지난 주말 유튜브 '먹방(먹는 방송)'을 보면서 닭발을 주문했다. 닭발 매니아로 알려진 연예인이 개발에 참여했다고 광고한 해당 닭발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했다. 주문 과정에서 '새벽배송'과 '일반배송'을 선택할 수 있었고 일반배송을 택했다. 정신없이 월요일을 보내고 화요일 새벽 출근길 현관문을 열자 택배상자가 놓여있었다. 닭발까지 배송받아 먹는 세상이라니 참 편리해졌구나 감탄하던 찰라, 배송시간 문자를 확인하고 먹먹했다. 오전 12시30분. 현관 앞 배송사진과 배송완료 문자가 도착한 시간이다. 대부분이 깊은 잠에 빠질 시간, 빠른배송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밤 늦게까지 택배 노동자가 배송에 나선 현실이 서글펐다.
올들어 13명의 택배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한 대리점에서 일하던 김모(남ㆍ36)씨는 지난 8일 새벽 4시28분 동료에게 "집에 가면 5시인데,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도 못자고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4일 뒤인 12일 김씨는 자택에서 숨진 채 동료에 발견됐다. 김씨가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낸 날, 서울 강북구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원종씨(48)도 택배 배송 중에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그대로 사망했다. 지난 12일 오전 6시 경북 칠곡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20대 A씨도 집에서 숨졌다. 그는 지병이 없었고, 술ㆍ담배는 하지 않았다.
CJ대한통운 운송노동자 강두한(39)씨는 지난 20일 밤 11시50분께 경기도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배차를 마치고 주차장 간이휴게실에서 쉬던 중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이튿날 새벽 1시쯤 사망했다. 강씨는 CJ파주허브터미널과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대형 트럭으로 택배 물품을 운반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사망 직전 18일 오후 2시쯤 출근해 19일 정오까지 근무한 뒤 퇴근했고 5시간 만인 같은 날 오후 5시에 다시 출근해 근무하다가 20일 밤에 쓰러졌다. 이달 들어서만 4명의 택배 노동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올해 택배 노동자 사망이 잇따르면서 지난 7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까지 만들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택배물량이 급격하게 늘면서 배송업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급증한 점이 '과로사'로 이어졌다는 것이 대책위의 지적이다. 그동안 택배업계에선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들이 배송물량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어서 업무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과로사의 원인을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택배기사들이 무리하게 배송물량을 확대한 탓으로 돌렸다. 대책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업무량은 예년에 비해 30% 이상 증가한 상태다.
하지만 일부 택배사들은 택배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배송수수료를 줄이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전날부터 총파업에 돌입한 롯데택배의 경우 송파 영업장 배송 수수료는 2017년 968원에서 2018년 935원, 2019년 880원, 2020년 825원으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삭감됐다. 근로기준법상 오후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이뤄지는 야간 근무자에게는 50% 가산된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많은 택배기사가 새벽 배송에 뛰어든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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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취업난은 더욱 악화된 상황이다. 이달 들어 숨진 쿠팡 물류센터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는 4년제 대학을 나와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매일 9시간 이상을 주 5~6일 근무했고 업무양이 많은 날이면 1~2시간의 추가 근무도 잦았다고 한다. 성실한 근태를 '스펙' 삼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를 감수하고 배송물량을 꾸역꾸역 채우는 것도 취업난과 무관치않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달들어 두 차례나 택배현장을 찾아 택배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약속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180석 거대여당의 힘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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