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도소, 공익인가 사적 복수인가…'신상 박제' 사이트들 도마 위
디지털 교도소·주홍글씨 등 '신상박제' 사이트들 논란
'웰컴투비디오' 손정우, n번방 등 성범죄자 응징 목적
무고한 일반인 피해 잇따르면서 '사적 처벌' 비판도
전문가 "사적 제재 사이트 운영은 불법…빠른 검거 해야"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성범죄 혐의가 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이른바 '신상 박제' 웹사이트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 웹사이트는 성폭력 살인 등 강력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사법기관을 대신해 '사회적 응징'을 목적으로 개설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무고한 이가 범죄자로 몰려 피해를 입는 등 부작용이 커 사실상 사적 제재인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들 신상 박제 웹사이트는 성착취물 이용자, 성범죄자 등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얼굴 사진 직장 학교 전화번호 등 상세한 신상정보를 웹사이트 게시판에 등록한다. 이같은 신상 정보 '박제'는 웹사이트 운영자들이 누리꾼들로부터 제보를 받거나, 직접 정보를 수집해 등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표적으로 '디지털교도소', '텔레그램 자경단 주홍글씨' 등이 있다.
신상 박제 웹사이트는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범죄자들을 민간에서 대신 응징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특히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미성년자 등 여성 성착취물을 제작해 텔레그램 비밀 메신저 방에서 유료로 유포한 이른바 'n번방' 운영자 등 성범죄자들의 형량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사회적 인식, 이에 따른 분노와 사법 불신이 이같은 민간 웹사이트 탄생의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손정우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약 2년8개월 동안 웹사이트를 통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22만여건의 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손정우에게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미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손 씨의 강제 인도를 요구했지만, 법원이 인도 불허를 결정하면서 손 씨는 형기를 마치고 지난 7월6일 석방됐다.
'뉴욕타임스(NYT)', 'BBC' 등 미국·영국 매체들은 당시 법원 결정에 대해 "(법원 결정은) 한국 아동 포르노 반대 단체들에게 큰 실망감을 줬다", "미국에서 아동 포르노 영상물을 받으면 징역 5~15년을 받는 데 반해 손 씨는 18개월에 불과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텔레그램 'n번방'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구매하는 등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으로 지난 7월3일 구속된 남성이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그런가 하면 n번방 및 이와 유사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핵심 멤버들의 형량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n번방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단체 '프로젝트 리셋'이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시민 750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99.8%가 디지털 성범죄 형량이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실제 '디지털교도소' 제작자는 사이트 소개란에 쓴 글에서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본 웹사이트는 해외 국가에 설치된 서버로 강력히 암호화되어 운영된다"며 "대한민국의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죄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같은 신상 박제 사이트들이 제한적인 정보에만 접근 가능한 민간 웹사이트라 무고한 이에게 피해를 줄 위험이 있는데다, 악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크다는 데 있다.
앞서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7월 '지인능욕'(지인의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해 온라인에 게재하는 것)을 요청한 인물이라며 대학생 A 씨의 얼굴과 학번, 전화번호 등을 공개했다. 디지털교도소 측은 자체 검증 결과 A 씨의 범죄 행위가 명확한 것으로 판단, 신상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 씨는 신상정보 박제 후 "교도소에 올라온 사진과 전화번호, 이름은 맞지만 그 외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지난 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박제 후 휴대폰 등을 통해 협박 문자 메시지를 받는 등 큰 고충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신병을 인도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한 법원 결정에 여성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지난 6월에는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 동영상 구매를 시도했다며 디지털교도소에 신상 박제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채 교수는 이후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채 교수 휴대폰을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디지털 교도소에 게재된 인물은 채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다 보니 디지털교도소 등 신상 박제 웹사이트는 사실상 사적 처벌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디지털교도소는 사적 처벌을 하는 것이고, 내용 자체가 명예훼손"이라며 "최근 접속 차단·삭제 요구 3건이 접수돼 심의 중이다. (디지털교도소에 대해) 시정명령을 하고, 그래도 안되면 형벌 조항까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이들 신상 박제 웹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빠른 검거가 필요하다면서도, 이같은 사적 제재가 이뤄지는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지난 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디지털교도소 운영은 불법이 분명하다. 빠른 속도로 범인을 검거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일들이 왜 발생했는지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디지털 교도소 등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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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성폭력, 특히 아동과 관련된 문제들은 워낙 처벌 수위가 낮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나서서 내가 사회를 위한 복수라도 공익적 목적으로 하겠다, 이게 이들 취지"라며 "정해진 형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 제대로 된 입법 절차나,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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