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작가로서, 운동가로서 SF로 쓴 여성·유색인 차별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환경 재앙으로 오염된 지구에서 살아가거나 우주로 도피하는 두 가지 선택지를 받아든 인류, 인간 사회로 진출하는 사이버 공간 속 생명들, 우주 탐사 중 무슬림 여성 연구자만 살아남은 식민 행성, 23세기 외계 생명체와의 무역협상… N. K. 제미신이 쓴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 담긴 세상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완벽한 이상 사회를 얘기하는가 싶더니 인간만이 증발하는 종말도 있다. 작가는 상상력으로 미래 모습을 그려내지만 이 미래는 작가의 머릿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이 반영돼 빚어진 미래다. 그가 "작가로서, 그리고 운동가로서 성장한 과정을 기록한 연대기"라고 쓴 이유다.
재미신은 '부서진 대지' 3부작으로 휴고상 최우수 장편소설상을 3년 연속 수상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3년 휴고상 제정 이후 3년 연속 수상은 처음이었다. 그런 그가 펴낸 첫 단편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는 22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다양한 색깔의 인물들과 낡은 질서와 틀에 대한 저항 의식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책의 제목을 흑인 여성으로서 SF와 판타지를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주제로 쓴 동명의 에세이에서 따왔다. 그는 책머리에서 SF와 판타지를 다루는 업계에서 조차 스스로 내면화한 인종차별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고 토로한다. 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두려웠지만 결국 보고 싶은 미래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첫 번째 작품인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에는 어슐러 르 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모티브로 한 도시 '움-헬라트'가 등장한다. 발음상 오멜라스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아프리카 도시의 이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행복과 번영이 가득하며, 기술적으로는 훨씬 발전된 도시다. 작가는 이 도시를 지탱하는 희생양을 얘기하며 도전적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결말에서 보여 준다. 인류의 육체를 지배하는 신체 강탈자를 다룬 로버트 하인라인의 단편 '꼭두각시의 비밀'을 모티브로 한 '깨어서 걷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자칫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종말'을 일상적이고 친근한 방식으로 풀어 가기도 한다. '렉스 강가에서'는 인류가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진 후에 믿어 줄 신자들이 없어 정처 없이 거리를 누비거나 스타벅스에 들르러 줄을 서는 신과 정령들이 나온다. '비제로 확률'은 지하철 사고 같은 재앙이 빈번히 일어나지만 한편으로 중병은 쉽사리 치유되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확률이 역전된 뉴욕에서 적응해 나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너무 많은 어제들, 충분치 못한 내일들'의 등장 인물은 온라인상에 남은 기록을 제외한 모든 것이 매일 리셋되는 현실에서 타인과의 연결을 갈구한다.
이렇게 펼쳐지는 다채로운 사고 실험의 향연 속에서 작가가 놓지 않는 것은 미래라고 결코 다르지 않을, 여성과 유색인이 소외당하는 현실이다. 그는 스스로를 제외시킬 수 없었기에 이야기에 꾸준히 흑인 캐릭터를 넣었다고 밝혔다. 특히 민권운동이 확산되던 1960년대 앨라배마 주를 무대로 사악한 요정에게서 딸을 지키려는 여성의 분투를 다룬 '붉은 흙의 마녀', 혁명을 통해 노예 제도에서 벗어난 최초의 흑인 공화국인 아이티의 첩자 여성과 미국 혼혈 여성 사이의 로맨스를 담은 '폐수 엔진', 허리케인이 강타한 뉴올리언스에서 '괴물'이라는 형태로 실체화된 혐오에 대항하는 인물들을 그린 '잔잔한 물 아래 도시의 죄인들, 성자들, 용들 그리고 혼령들'에서는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인종차별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엔 현재 우리의 행동에 따라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작가의 호소가 반영돼 있다. 책을 덮어도, "그러니 보시라. 저기 미래가 있다. 모두 함께 출발하자"라는 작가의 말은 강렬한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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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N. K. 제미신 지음/황금가지/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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