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가치를 결정하는 현대 사회…기업들도 금융시장·주주가치 우선
몸값 비싸진 금융, 제조업 등 확산…2008년 금융위기 '금융화' 결과물
부당한 높은 이득 '가치 착취' 정당화…오늘날 자본주의 위기로 이어져

[남산 딸깍발이] 가치를 삼킨 가격, 불평등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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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함부로 덤비지 마라.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경제학자다."


'가치의 모든 것' 띠지에 인쇄된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서평이다. 2011년 9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때 '우리는 99%다'라는 슬로건이 떠올랐다. 99%의 분노에 대한 글이려니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마추카토는 서문의 첫 문장을 "1975~2015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세 배로 늘었지만 미국 노동자 대다수의 시간당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거나 하락했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거의 40년 동안 경제 성장의 이득을 소수의 상류층이 거의 다 가져갔다는 의미"라고 꼬집는다.

마추카토는 이같은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을 가치와 가격의 전도(顚倒)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매겨지는 가격이 정당한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가치의 모든 것'인 이유다.


마추카토에 따르면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가격보다 가치를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가격과 가치를 생각하는 방식이 거꾸로 뒤집혔다.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역전의 시기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대두하는 시점과 겹친다. 사회주의론자들이 개혁을 주장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에 비해 합당한 보상(가격)을 받지 못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본가들은 이에 맞서 가치가 아닌 가격이 중요하며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론을 강하게 지지했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많은 보수를 받는 자체가 곧 가치있는 일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개념은 오늘날 경제의 많은 부분에서 통용된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가 개발한 신약에는 천문학적인 가격이 붙는다. 마추카토는 50만달러(약 5억9700만원)짜리 백혈병 치료제가 미국 정부 승인을 받았다는 2017년 USA투데이 기사를 인용한다. 치료 효과가 아무리 뛰어난들 비싼 가격 탓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가 거의 없다면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가격이 곧 가치라는 개념은 기업이 금융 시장과 주주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가치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투자돼야 할 기업의 이익이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자사주 매입 등에 쓰인다고 마추카토는 지적한다.


가격이 곧 가치라는 개념은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지표인 GDP에 금융이 반영되는 결과를 낳았다. GDP는 각 생산단계의 부가가치가 더해진 총량이다. 초기 경제학자들은 금융을 가치를 만들어낸는 활동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는 가치를 이전하는 활동이라고 여겼다. 즉 금융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범주에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금융이 GDP 산출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전후 제조업 호황이 사그라드는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금융에 대한 규제도 풀리기 시작했다. 금융 산업이 급속히 커지고, 금융이 제조업과 비금융 서비스업으로까지 파고드는 이른바 '금융화' 현상이 일어났다. 2008년 파생상품이 초래한 세계 금융위기는 극단으로 치달은 금융화의 결과물이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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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카토는 가치와 가격 개념의 전도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가치와 가격의 개념 전도로 오늘날 가치 착취가 가치 창조의 가면을 쓰고 부를 착취하기 쉽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추카토가 설명하는 가치 창조는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이며 가치 착취는 자원을 이전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가격이 사회 전체에 주는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주가로 표현되는 수치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착취는 정당화되고 삶의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은 외면받는다.


마추카토는 이처럼 착취가 정당화되고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한 이유가 가치보다 가격을 우선한 것처럼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왜곡 또는 오인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대는 오늘날 가치를 착취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18세기 경제학자들에게 '토지의 임대료'를 뜻하는 지대는 정당하게 획득하지 않은 소득, 즉 불로소득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단순히 이전시키는데서 나오는 소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이 곧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개념에서 지대는 착취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지대는 어쨋든 가격을 만들어내고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추카토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도 정책 결정자들은 지대를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추카토는 애덤 스미스를 시장이 알아서 두게 하라는 자유방임주의자로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스미스는 올바른 시장이란 정부의 정책이 없는 시장이 아니라 지대 추구가 없는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스미스의 책 '국부론'이 두꺼워진 이유도 당시에 스미스가 짚고 넘어가고자 했던 지대 추구 행위가 많았으며 스미스가 생산적인 활동과 비생산적인 활동을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추카토는 2018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받았다. 그는 자본주의 위기 타개를 위해 경제학에서 가치의 개념을 다시 중심에 두어야 하며 시장을 만들고 구성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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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모든 것/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안진환 옮김/민음사/2만3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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