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현직 교사인데…긴급점검 SNS 홍보하고 공문 발송
"범인에게 범죄 피하라 공지한 꼴"
전문가 "불법촬영, 물리적 범죄만큼 심각한 성범죄"

교육부가 최근 학교 내에서 발생한 불법 촬영 사건과 관련해 긴급 전수조사를 지시한 가운데, 이를 공개적으로 홍보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교육부가 최근 학교 내에서 발생한 불법 촬영 사건과 관련해 긴급 전수조사를 지시한 가운데, 이를 공개적으로 홍보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강주희 인턴기자] 교육부가 최근 학교 내에서 발생한 불법 촬영 사건과 관련해 긴급 전수조사를 지시한 가운데, 이를 공개적으로 홍보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긴급 점검을 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 불법 촬영 카메라를 설치한 범죄자들이 미리 대응할 시간을 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긴급 점검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학교 내 성범죄 발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중요성을 기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일 경남도교육청과 경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김해의 한 고등학교 1층 여자 화장실과 창녕의 한 중학교 2층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카메라가 발견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두 사건의 범인은 모두 해당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교사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학교 내 불법 촬영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교 내 불법 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전수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긴급 점검을 시행한다는 포스터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 게재하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긴급 전수조사 시행을 공개적으로 알리면서 범죄자들에게 교내에 설치한 불법 촬영 카메라를 회수할 시간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교육부가 학교 불법촬영 관련 긴급점검을 시행한다며 올린 홍보글./사진=교육부 페이스북 캡처

교육부가 학교 불법촬영 관련 긴급점검을 시행한다며 올린 홍보글./사진=교육부 페이스북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야 이 멍청이들아 '긴급점검'을 '예고'하다니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멍청해질 수가 있는 건가"라며 교육부를 향해 강하게 비난했다.


시민들 또한 "전수 조사 할 테니 얼른 회수하라 이건가", "예고하고 가면 잘도 조사되겠다",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제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라"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논란이 확산하자 교육부는 뒤늦게 관련 게시물을 삭제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함을 간과하고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불법 카메라 점검 시행 안내문을 공문으로 발송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가해자가 학교의 현직 교사로 밝혀진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긴급 점검 안내문을 학교 내부 관련자 모두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 누리꾼 A씨는 "가해자가 학교 내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인가. 이 사건의 가해자는 외부인이 아니라 현직 교사다"라면서 "어쩌면 불법 촬영 가해자가 학교 내부에 있을 수도 있는데, 범인에게 범죄를 피하라고 친절하게 공지한 꼴 아닌가"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 내 불법 촬영 범죄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 내 불법 촬영 범죄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 내 불법 촬영 범죄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4년간 학교 내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총 451건 범죄가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5년 77건, 2016년 86건, 2017년 115건, 2018년 173건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중·고등학생 3%는 학교생활 중 불법 촬영과 촬영물 유포 피해를 봤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15일 교육부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중고교 양성평등 의식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중고생 14만4천여 명 중 3%는 학교생활 중 불법 촬영이나 유포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는 재발 방지를 위해서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이 사건이 공동체 안에서 벌어졌고, 가해자가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전수 조사 사실을 모든 교직원이 열람할 수 있는 공문으로 발송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책"이라면서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너무나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수조사를 해서 불법 촬영 카메라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이런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중요성을 기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AD

이어 "최근에는 공공장소마다 불법 촬영을 하지 말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을 만큼, 불법 촬영 자체가 범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런 일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교사가 이런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처벌 강화를 통해 불법 촬영이 물리적 성범죄만큼이나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