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가을귀]잘 봐! 이게 진짜 편견과 싸우는 여성이야
김선지 작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페미니스트 이탈리아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재조명
끔찍한 성폭력 경험, 작품에 투영…적장 베는 강건한 여성 유디트 그려
성적 매력 덧씌운 남성 작품과 차별 "편견·차별 부순 작품 정신 높이 사야"
유디트(유딧)는 구약성서 외경 '유딧서'에 나오는 유다왕국의 아름다운 미망인이다.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보낸 아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 카라바조(1571~1610), 조르조네(1478~1510),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은 그의 담대한 살인에 주목했다. 끔찍한 일화에 성(性)과 죽음을 함께 표출하는 드라마적 성격이 내재된 까닭이었다.
유디트는 시대 상황과 작가의 개성에 따라 표정ㆍ행위가 현저히 다르게 나타난다. 카라바조, 조르조네는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버리는 행위에 주목했다. 클림트는 살인의 흔적을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가슴을 열어젖힌 채 눈을 몽롱하게 뜨는 얼굴을 부각했다. 목숨 걸고 위험한 사명을 수행한 유디트를 '팜므 파탈'의 에로티시즘으로 변형시켰다.
유디트를 자기의 내밀한 복수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평가받는 화가도 있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 알려진 이탈리아 태생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다. 그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서 유디트는 왼손으로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짓누른다. 그 위로 선혈이 배어 나오지만, 유디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능숙하게 칼로 목을 자른다.
카라바조나 조르조네가 묘사한 유디트는 젠틸레스키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몸을 살짝 뒤로 빼고 있어 마지못해 참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도 여리고 예쁘다. 적장의 목을 베는 행동은 단호하나 침대 시트에 튄 피를 역겨워하는 듯한 표정이다. 조르조네의 유디트는 이보다 더 우아하고 품위 있어 보인다. 막 목을 내리쳤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얼굴이 고요하고 인자하다.
김선지 작가가 쓴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걸출했던 여성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젠틸레스키를 꼽는다. 대표 작품들을 분석하며 그가 미술사에서 더 크게 조명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젠틸레스키가 10대에 겪은 성폭력 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작품이다. 그는 열일곱 살 무렵 아버지의 동료이자 자기의 그림 선생인 아고스티노 타시(1578~1644)에게 성폭행당했다. 젠틸레스키는 재판을 신청했다. 하지만 부당한 심문은 물론 부인과 검사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반면 가해자인 타시는 고작 1년 실형을 살고 풀려났다.
간신히 명예를 회복한 젠틸레스키는 피렌체로 건너가 그림 작업에 몰두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그 무렵 완성됐다. 린다 노클린 같은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은 이 그림이 남성의 성적 폭력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개인의 복수심을 성서 이야기로 교묘히 가장해 독립적이고 굳센 삶의 태도부터 다졌다는 것. 유디트의 얼굴이 젠틸레스키 자신으로, 홀로페르네스가 타시의 얼굴로 그려진 사실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했다.
일부 미술사가들은 이런 해석에 반대한다. 대신 그가 영리하게도 강간 재판 이후 얻은 유명세를 이용해 성적 묘사가 가득한 여성들 그림을 그려 남성 후원자들에게 어필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들어서는 젠틸레스키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우고 기득권 예술가 그룹에 자신도 알릴 겸 강렬하고 선혈이 낭자한 그림을 그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젠틸레스키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으로 새로 정착한 피렌체 사회에 자기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시키려 했을 수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실제로 메디치가(家)와 피렌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한 귀부인이 이 그림을 보고 기절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관심은 더 증폭됐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어느 쪽에도 무게를 두지 않는다. "젠틸레스키의 작품이 불행한 성폭행 사건으로 입은 정신적 상처의 투영과 그 치유수단이었든, 화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충격적 방법의 선택이었든 간에, 17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여성 화가로서의 젠틸레스키의 미술사적 위치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젠틸레스키가 남긴 업적은 엄청나다. 여성이 전문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에 전례 없이 성공한 화가다. 코시모 1세 데 메디치(1519~1574)가 1563년 설립한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의 최초 여성 회원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당시 여성에게 녹록지 않았던 역사와 성서를 주제로 과감하게 작품 활동에 나선 최초의 여성 화가이기도 하다.
대다수 여성 미술가가 그렇듯 젠틸레스키 역시 사후에는 미술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작품들은 1900년대 초 이탈리아의 미술사가이자 카라바조 연구자인 로베르토 롱기(1890~1970)에 의해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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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이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서 찾아낸다. "젠틸레스키가 그린 강인한 유디트와 달리 남성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는 다분히 온순하고 부드러우며 성적 매력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들 그림 속의 연약하고 우아한, 혹은 교태 어린 자세의 여성이 애국심에 불타 그런 위험한 일을 수행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유디트가 아름답기는 했을 테지만, 적어도 적장의 목을 벨 정도의 결의와 강건한 정신이 얼굴에서만큼은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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