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활성화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시스템 전환돼야
공장제작 및 모듈러 조립방식 대세…한국 기업 서둘러야

[남산딸깍발이]해외건설 기업 '어닝쇼크'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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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한국의 해외 건설 역사는 '수주 신화'로 채워져 있고, 1970년대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수주 신화와 어닝쇼크의 반복'이다."


1980년대 초반 중동 건설 붐, 1990년대 중반 동남아 건설 붐, 2010년대 초반 해외 플랜트 건설 붐 등 세 차례에 걸친 해외 건설 붐 이후 실적은 어땠을까. 수주한 해외 건설 공사가 수익을 얼마나 창출했는지는 알 수 없고 대중의 관심사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세 차례 해외 건설 붐 주도 업체들은 세 차례 모두 주주들에게 '어닝쇼크(earning shock)'를 안겼다. 어닝쇼크란 기업이 시장의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을 발표함으로써 주주들은 패닉에 빠지고 주가 하락이 초래되는 일이다. 가장 큰 충격을 던진 때가 2013년 4월이다.


◇ 충격적 어닝쇼크 후 반성과 대책 수립으로 실적 개선 됐을까?

2013년 4월 GS건설은 해외 플랜트와 환경 프로젝트 원가율 악화로 1분기에 5355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같은 해 1분기에 21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가 2분기에 887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줄었다. 하지만 3분기에 다시 7468억원의 초대형 적자를 기록했다.


SK건설도 1~3분기 누적 영업손실이 3147억원으로 집계됐다. 대림산업은 4분기에 319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대다수 기업은 적자 원인으로 중동 플랜트 공사의 원가율 상승을 꼽았다.


'수주 신화와 어닝 쇼크'의 저자는 "주요 해외 건설 기업들의 어닝쇼크 발표는 2013년뿐 아니라 2014년과 2015년, 심지어 2018년에도 불거졌다"면서 "이후에도 해당 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객관적인 증거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2013년의 어닝쇼크는 1회성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썼다.


어닝 쇼크의 충격이 컸던 만큼 개별 기업 차원에서 철저한 반성과 대책 수립은 이뤄졌을까. 이후의 해외 플랜트 사업은 어느 정도 정상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상식이겠다. 그러나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대규모 해외 플랜트 공사 손실로 인한 어닝쇼크에도 건설기업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2014년 이후 국내 주택경기의 초호황에 힘입은 바 크다"면서 "결국 해외 플랜트 부실로 인한 손실을 국내에서 아파트 팔아서 갚았다, 해외 손실을 국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서 메꿨다는 비아냥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GS건설 전략 담당 겸 경영연구소장, 한미글로벌 사장,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으로 당시 시장 상황을 체감했던 저자의 평가는 아프다. 해외 발주처가 '최저가 낙찰제'를 운용하는데 한국 기업들이 과도하게 경쟁하다 보니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걸렸다는 주장도 그럴싸한 변명일 뿐이다.


◇ 모든 수주가 저가? 정상 수주가 더 많았는데?


모든 프로젝트가 저가 수주였을까. 저자는 "정상 수주가 오히려 더 많았고, 문제는 정상 수주 공사에서도 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라면서 "원인 규명보다 원인을 외부에만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가 수주가 어닝쇼크의 원인 중 하나지만, 모두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정답은 시스템 개선에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과거 시스템'에서 '미래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시스템은 1980년대나 1990년대가 아닌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의 한국 해외 건설업계 시스템이다. 시장정보의 수집과 분석, 사업전략, 조직, 인력, 관리 등 모든 면을 개선해야 하는 이른바 '해외 건설 시스템의 리셋'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글로벌 기업의 사업전략도 그 나라의 건설 시스템이란 기반 위에서 수립되고 진행된다"면서 "해외 건설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내 건설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시장에서 우리의 주요 경쟁자로 등장한 중국에 대해서도 냉정한 판단을 요구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플랜트를 제외하면, 우리가 중국 기업보다 경쟁력을 갖춘 건설상품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중국 우한의 병원 건축 사례를 예로 들었다.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난 1월 23일 밤부터 훠선산 병원 신축에 착공했다. 800여대의 중장비, 7000여명의 건설노동자가 투입됐다. 전통적인 현장시공 방식으로 1000개 병상이 갖춰진 병원을 준공하려면 2년 정도 소요되지만 중국은 열흘 만에 완공했다.


저자는 "인해전술 방식으로 인력만 대량 투입해 2년 걸릴 병원을 열흘 만에 완성한 것으로만 볼 수 없는 문제"라면서 "공장 제작 및 조립 방식으로 대규모 시설물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패널이나 구조물을 대량 제작할 수 있는 건자재 업체가 있어야 하고, 설계와 엔지니어링 및 프로젝트 관리 역량과 물류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도 해외 건설시장에서 제3국 인력을 활용한 시공도 점차 공장 제작 및 조립 방식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자는 지난 1월 GS건설이 미국ㆍ영국ㆍ폴란드의 모듈러 업체 3곳을 인수하고 해외 모듈러 시장으로 진출할 채비를 갖췄다는 점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공장 제작 및 조립 방식이 이제는 대세라는 뜻이다.


그는 "지금은 새롭게 전개될 코로나19 이후의 해외 건설에 대비해야 할 때"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도 과거의 경험과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디지털 전환을 비롯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했던가. 정부나 건설사, 그들을 대변해온 언론의 입장에서는 무지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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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신화와 어닝 쇼크/이상호 지음/라의눈/2만원)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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